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듀군 Dec 16. 2023

킥보드를 타다 넘어진 아이를 보며

부끄러울까? 아니 당당하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photo by pexels

저 멀리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진 아이를 보았다.


어린아이 주변엔 또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넘어진 아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일어나 유유히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주변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내가 동경하는 삶과 맞닿아 있었다.


부끄러움에 잡히지 않는 삶은 어떨까?


나의 가장 부끄러운 면을 서슴없이 공유할 때 자유로워지고 싶다. 


부끄러움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놔두기 싫다.


나는 항상 남 앞에서 나이스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약점은 철저히 감추고, 좋은 면만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 말이다. 밝고 친절하고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살아갈 지표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일어나 다시 사라지는 작디작은 그의 어깨를 보며 깨닫는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옷을 훌훌 털고 다시 출발하는 그의 모습은 부끄러움 앞에서의 당당함을 말한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유연하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멋지다.


내 생각에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것을 먼저 내려놓고 대화를 이끌어 간다. 솔직함을 끌어낸다. 건설적인 대화로 향한다. 부끄러움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며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낯설지 않다. 편안하다. 그간 쌓아왔던 짐 칸이 하나둘씩 비어지는 느낌이다.


부끄러움을 고백할 때 솔직함의 풍부해짐을 경험한다.


photo by pexels

혹자는 이야기한다.


각박한 세상 속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말 한마디로 나를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고.


물론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직장과 특정 이해 관계에 얽혀 있을 때 부끄러움을 공개하는 것이란 쉽지 않다. 그들은 내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사람은 한 번 내린 판단을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며, 쌓아온 이미지가 변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깊은 관계를 포기하는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 없는 것은 애써 하지 않음을.


그러나,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이들이라면 부끄러움의 당돌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솔직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은 쉽게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신기한 경험을 한다.


내 안에 있는, 말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고백하기 시작하니 온몸이 떨린다. 제어할 수 없다. 수십 분간 불편한 상태에 이른다.


잠시 후 평안을 찾는다. 심박수는 정상을 회복하며 차분해진다. 


'이것이 자유함일까?'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다른 이들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부끄러움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한 대화가 오고간다. 


문득 꾸준한 시도가 가져다 줄 성장이 기대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부끄러움을 비집고 피어나는 꽃은 그 자체로 온전하고 편안한 정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리는 눈이 당신에게 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