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한국 집, 내 방
셰어하우스에 살다 보면 사람들 간에 서로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또 서로 다른 활동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겪는 일들이 있다. 가령 나는 아침 5시부터 출근 준비를 해야 해서 일찍 잠들어야 하지만, 다른 분들은 10시에 퇴근한다. 그러니 늘 12시까지는 요리하는 소리와 대화하는 소리로 주방이 시끌시끌하다. 심지어 침대 헤드가 주방과 닿아 있어 싱크대를 사용할 때면 침대가 덜컹덜컹 움직이기도 한다.
이런 탓에 잠 못 자는 날들이 늘어나면서 짜증이 누적되어 이사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내가 셰어하우스에 사는 동안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에어팟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해서 귀를 막았고, 침대 헤드도 앞쪽으로 조금 당겨 위치를 조정하기도 했다. 불편하지만 셰어하우스에 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자 언제부턴가 그냥 수용하게 됐던 거 같다.
가까스로 되찾은 편안함은 어느 날 집주인의 문자로 인해 와장창 무너졌다. "고민하다 연락드립니다. 아래 사항을 지켜주세요. 불편하시면 집에서 나가주시면 됩니다."
나는 문자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움과 수치심, 억울함 같은 감정을 느꼈다. 또 이제야 안정되어 가는 내 삶이 와장창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언제든지 나는 길거리에 나가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내가 같이 살기에 불편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그럴 때면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기억들이 쫙 지나가면서 그건 아닌 거 같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지만, 그 문자를 읽으면 마치 꼭 내가 문제 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같이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친구는 “언니랑 같이 살면서 불편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오히려 고마웠지. 이 모든 건 집주인의 문제야.” 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내 못난 모습까지 합리화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마음이 풀리고 그제야 진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집주인들을 마주할 용기가 났다.
속상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셋방살이가 원래 그렇게 서럽다."
셋방살이, 그렇게나 내 처지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엄마 말이 맞았다. 나는 호주에서 셋방살이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집주인의 문자를 받고 나서부터 집에 머무는 시간들이 편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설거지 후 그릇 정리 방법(위치 및 방향), 신발장에 신발 넣는 법 같은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 대해서 컴플레인을 했다. 근데 이런 문제들은 사람들마다 다른 생활 습관이 아닌가. 차라리 자신들의 방법을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의 방법을 모르는 채로 또 어느 부분에서 실수를 할지 모르니 그 마음이 참 고역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공용 공간을 쓰지 못했다.
내가 알겠다고만 해서인지 날이 갈수록 컴플레인은 더 자주 왔다. 요리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요(저는 계란만 구웠는데요 밤마다 들리는 요리 소리는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현관문 살살 닫아주세요, 변기 뚜껑은 항상 닫아주세요(나도 물 내릴 때는 뚜껑 항상 닫는다 ㅜㅜ 계속 닫아두면 물때가 더 잘 끼길래 사용 후 열어 두었을 뿐이다).
내 모든 생활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집에서 계속 머물렀던 이유는 이 동네를 사랑했고, 내 방과 이 아파트 시설을 사랑해서였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슬슬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의미여야 할까. 그동안 집을 고를 때 기준은 가령 이런 것이었다. 폼롤러를 할 수 있도록 넓은 마루 바닥, 시내로부터 너무 멀지 않은 곳, 주변에 마트가 2개 이상 있을 것, 주변에 산책하기 좋은 안전한 동네일 것.
이제는 그냥 내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같이 사는 사람들과 마주하기를 겁내기보다는 즐겁게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그리운 내 한국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