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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1일 차의 새싹 일기

내 차 한 대 없어도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Mar 24. 2025

휴일이 끝나 가는 저녁, 내일 어딘가로 가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 아침에 머리 감고 있을 거 같아.

 - 걱정 마, 내가 현관에서 막아줄게.

남편의 말에 잠시 상상했었다. 그래도 생각보단 담담히 첫날 퇴직자의 새싹을 잘 틔웠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미안함을 약간 넣어서 웃어주었고 좋아하는 인간극장을 예고편까지 느긋이 다 보았다. 받아두었던 꽃바구니의 꽃들을 작은 꽃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 시든 것은 베란다에 말려두고 작은 꽃병 네 군데로 소분하고 나니 전화가 온다. 

먼저 퇴직하고 외손녀 등원 도우미 해 주고 있는 작은언니다.

 - 오늘 출근 안 하니 어때?

 - 좋지, 편안하고.

 - 너 오늘 진짜 출근 안 하길 잘했어. 연휴 끝에 비도 오고 터널 쪽에 사고 나서 거의 모두 지각이야. 유니 유치원 버스도 30분이나 늦게 왔어.

나의 퇴직 첫날, 내 차 한 대 없었는데도 출근길 교통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보다.  언젠가 출근길에 쏟아진 폭우로 꼼짝없이 차 안에서 1시간을 갇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 이렇게까지 하면서 출근을 해야 하나

그렇게까지 하면서 출근을 했고 벚꽃비 떨어진 날엔 앞 유리에 올려진 벚꽃 송이 날려가지 않도록 살살 기어가며 주차장에 도착했었다.

 - 수월한 날도 있고 힘든 날도 있지. 그것들의 평균이 모여 나의 연봉이 되는 거고

계획대로 안 되는 게 계획인데 퇴직 새싹의 길에 무사히 올라설 수 있었던 건 그 숱한 출근길들이 모여 가능했다.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힘, 무의식적으로 출근을 하던 그 순간들이 모여 퇴직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 자기 극복의 습관에 익숙하게 된 사람은 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같다. 그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키질하는 바람에 날리는 왕겨처럼 연약한 동료들이 바람에 날려갈 때에도 그만은 탑처럼 우뚝 서 있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은 직장인이었던 동안에는 버티는 힘을 주었고 퇴직 새싹이 된 지금의 나에게는 축하의 말을 건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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