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보리! 라고 말하면 입 안에서 휘파람이 나올 것 같다. 오랜만에 보리차를 끓여본다. 그동안 주전자를 쓰진 않았으니 그냥 있는 스텐 냄비에 까슬한 볶은 보리를 한 줌 넣고 물을 적당히 넣어준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물길 따라 점점 노란색과 갈색의 중간 그 어디쯤 있는 보리 색깔이 천천히 우러나온다. 고소한 보리 향이 코로 먼저 들어온다. 따끈한 보리차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넘기면 입, 목, 배까지 따뜻해진다. 적당히 식혀 냉장고에 넣어두면 찹찹해진 보리찻물이 온몸을 생기있게 한다.
달콤 고소 향긋한 보리차는 어릴 때가 생각나는 맛이다. 지금부터 여름 지나도록 보리차를 끓이는 큰 주전자는 항상 마루 끝에 있었다. 여섯 남매에 서른 마지기 넘는 논농사에 몇 평인지도 모르는 밭농사까지 다 짓던 엄마는 어떻게 보리까지 볶아서 보리차를 끓여댔을까?
난 둘 키우면서도 얼음까지 콸콸 나오는 정수기 설치해 놓고 썼었다. 도저히 중학생 아들 둘의 얼음이나 물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독립해 가니 생수를 사다 먹는다. 이래저래 환경에는 미안한 노릇이다. 사이사이 보리차 티백이나 옥수수 티백을 사서 끓여 본 적은 있다. 아이들 아주 어릴적이었나 보다. 그 또한 번거롭다는 이유로 몇 번 하다가 말았던 걸 보니 내가 원하던 그 맛은 아니었던 것 같다.
관심을 가지고 보니 의외로 보리를 볶아 파는 곳이 많았다. 시장에서 선식이나 미숫가루 파는 곳은 대부분 볶은 보리를 팔고 있었고 일주일마다 오는 아파트 알뜰 장터 뻥튀기 사장님도 팔고 계셨다. 직접 볶았다며 자부심이 대단하셨는데 모양을 잘 보라고 국산 보리는 다르다고 하시지만 나야 봐도 맨날 퉁퉁이, 사장님 말 믿고 조금씩 사 본다. 가게마다 조금씩 볶은 보리 맛이 다르긴 했다. 고소한 풍미는 확실히 티백과는 구분된다. 나야 엄마처럼 생보리를 가마솥에 볶아 끓이는 건 아니지만 볶아진 보리를 골라보는 것도 여유라는 다른 이름이어서 좋다.
보리차 맛있다고 했더니 친구가 보리차 원액도 판다고 한다. 찬물이나 따뜻한 물에 원액 한두 방울 넣으면 보리차가 된단다. 더치커피 원액처럼. 정말 멋진 발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바쁘지만 정말 보리차가 먹고 싶거나 더운 여름 아무것도 하지 싫을 때는 충분히 해 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볶은 보리 한 봉지 사 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심히 익어가고 있을 우리 보리들! 농부님 손에서 잘 자라서 나중에 만나자, 보리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