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님을 인터뷰하다
30대 후반부터 지켜봐 온 형님의 삶은 소극적이긴 했지만 평범에 가까웠다. 아주버님과 연애 후 결혼, 그리고 두 자녀를 두기까지. 40대 중후반에 터진 아주버님의 사업 실패 그것이 첫 번째 단추였는지 가세의 기울어짐은 형님의 우울까지 함께 가져왔다. 전화 한 통 받기 전에도 내 목소리를 낮고 작게 내렸어야 했다. 나의 쾌활함과 밝음이 우울한 형님의 삶에 또 다른 고통이 될까 봐.
형님네 가족은 모두 의기소침했고 큰 소리를 내거나 마음껏 웃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친인척 대소사에도 언제나 열외였다. 그러다 몸으로 빚을 갚아 보려 애쓰던 아주버님이 50대 중반, 많지 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다행인지 아주버님의 성실이 가족의 언덕이 되어 남은 세 가족은 아버지가 하시던 일과 연관된 일들을 하며 함께 살고 있다.
아주버님이 떠나고 9년! 60대를 넘어선 형님은 어느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지난날의 우울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함께 있을 때는 그렇다. 물론 혼자 있는 밤이나 때때로는 우울할 수도 있다.
어떤 구름에 비 들어있는지 모른다던 카톡 프사가 행복은 틈틈이 챙겨야 한다고 바뀌었다. 가족 대소사에도 적극적이다. 식사 모임에도 잘 안 나오시더니 이젠 먼저 제안하신다. 새로 개업한 친척 가게에는 지나던 길이었다며 화분을 사 들고 오시기도 했다.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이웃언니가 있다며 열무김치를 택배로 보내주기도 하신다. 갓 뽑은 마늘종, 말린 고사리들이 택배 사이사이에서 형님 사는 곳의 봄을 담아왔다. 언젠가는 요즘 읽을 책이 뭐 없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많이 달라진 건 아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자녀 둘이 결혼을 안 하고 함께 있으니 그러한 것이 새로운 심리적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외부 상황은 더 이상 형님을 짓누르지 않는 것 같다. 달라졌다. 확 달라졌다.
생기와 활기가 온몸 가득 뿜어져 나온다. 유추가 가능한 이유는 운동이다. 가까운 지리산을 시간 날 때 다니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한 번은 30대인 조카가 엄마와 함께 지리산에 간 적이 있는데 자신은 헉헉거리는데 엄마는 서서 기다려 주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태보라고 태권도와 복싱을 함께 하는 운동을 바우처 지원받아 퇴근 후에 한다고도 하셨다. 함께 연습한 사람들이 팀을 이뤄 지역축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자전거 타기는 강도가 낮아 스피닝을 군민체육센터에서 하신다고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전해 들은 운동 이야기였다. 나의 50대 이후 삶의 모토인 운동을 일삼아, 일을 운동 삼아 생활의 중심에 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의 원리에서는 뇌 속 혈액 공급의 변화가 기억 변화에 영향을 주고 기억 변화는 성격 변화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운동이 뇌 속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한 뒤 이는 다시 운동신경통로와 연합신경통로의 투과성을 변화시켜 간단한 건망증은 물론 근육 강화, 그리고 기억력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성격 변화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꼭 해보고 싶었던 형님과의 브런치가 있던 날,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 이렇게 변화된 덕분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형님의 대답이 궁금하다. 나의 생각이 맞을까도 궁금하다.
- 별거 없는데? 내가 변했나?
예상과는 다른 듯, 어쩌면 맞는 대답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