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첫 번째 사랑니는 언제 뺐을까? 기억도 없다. 유난히 치과 쪽 질환이 잦다 보니 치과를 자주 다녔다. 40대 초반에 내 생애 최고의 치과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치아의 절반을 임플란트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얗고 고른 치아를 가진 나를 보고 원장님은 치열의 교과서라고 하셨다. 하지만 강한 치아는 아니었다. 마음 써서 몸 써서 칫솔질을 해도 어김없이 질환은 발견되었고 치과에서 말하는 모든 치료 일정을 순순히 따랐다. 원장님은 치료에 진심이었고 자신의 팔 떨림을 막기 위해 골프도 안 하시는 분이었다. 본인이 만족하지 않으면 치과를 열 번도 더 오게 했다. 매번 조퇴를 하고 가는 길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달랐다.
- 이제 오전에도 올 수 있어요. 퇴직했어요!
하니 실장님이 웃으신다.
- 그래도 오후에 오셔요. 원장님이 오후 출근이시거든요.
원장님은 언젠가부터 나의 마지막 사랑니를 눈여겨보셨다. 맨 안쪽에 있어 어금니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면서 옆에 있는 어금니의 옆길을 막고 있단다. 도움은 안 되고 딱 붙어서 충치 가능성만 높이고 있으니 빼자고 하셨다.
- 앞으로도 조금은 더 지혜로워야 하는데요.
- 이걸 빼야 더 지혜로워집니다.
맞는 말씀이다. 입속 건강이 뇌 건강과 직결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마음을 먹었어도 사랑니는 아직 마음을 먹지 않았는지 잇몸에서 제법 실랑이를 벌였다.
- 수고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를 마음속으로 수십 번 하는 순간, 툭 하고 앓던 이가 빠졌다.
- 하느님은 우리 몸에서 하나씩 하나씩 가져가신다. 그래야 인간은 조금 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씩 둘씩 그렇게 사랑니 네 개를 모두 내어놓았다. 시원하고 간소한 내 잇몸이 혀끝에 느껴진다. 간소하고 지혜로운 노년 중에 일단 간소함은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부여잡고 있다고 좋을 리만은 없는 것이 꼭 사랑니만은 아닐 것이다. 보낼 것은 보내고 남은 것들을 헤아려 보아야 하는 순간이다.
내 사랑니는 더 이상 까치가 물어가지 않겠지만 까치 같은 원장님이 계시니 지붕 위에 박꽃 올라가듯 치과를 맘 편히 드나들어 볼 참이다.
간소해진 나머지 이들을 혀끝에서 매끄럽게 담아본다.
- 꽃을 보듯 너를 대할게. 천천히, 공을 들여,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