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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없는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법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오월은 푸르다. 맑은 날은 그대로 푸르고 비온 날은 그 뒤에 더 푸르다. 이런 달에 어린이날이 있다니 참 잘 정한 것 같다. 어린이 두 명은 어느새 다 커서 어른이가 되었고 해당 사항 없어진 어린이날이 조금 서운했다.


몇 년 전, 건너 건너 한 생명이 태어났다. 언니의 딸, 그러니까 조카딸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다. 활약상은 언니를 통해 듣고 있지만 그래봐야 일 년에 두어 번 얼굴 볼까 말까, 그래도 이 꼬물이의 동영상이면 코를 박고 보게 된다. 호칭도 알려줘야 해서 그 꼬물이에게 나는 이모할머니로 통한다.


작년 어린이날에는 현금을 줬었다. 맛있는 거 사줘 그러면서. 올해도 그럴까 하다가 그냥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요즘 트렌드도 모르면서 이모할머니는 과감했다. 그래봐야 검색 정도지만. 마음먹고 검색한 지 30분도 안 돼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결재까지 다 끝나 있었다.

내일로 미루면 좋은 것들로 오늘 밤의 야식과 지금의 결제 버튼이라고 늘 다짐하고 있었건만 그 순간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냥 이걸 받고 좋아서 팔짝팔짝 뛸 꼬물이 생각에 마음이 홀딱 넘어가 버린 것이다.


5세 여자아이에겐 무조건 핑쿠, 핑쿠!라는 말을 들었다. 핑크리본 달린 핑크 가방에 핑크 립밤, 핑크 자외선팩트, 핑크 스티커까지! 그걸 고른 50대 여성도 사실은 핑크 아닌가 생각도 했다. 이제부터는 배송만 기다리면 되는데 총알이며 로켓이며 광속 등에 익숙해진 탓인지 더디기만 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탓인지 결재는 감사한데 배송은 죄송하다는 문자만 계속 날아왔다. 이러다 어린이날을 맞추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사월의 마지막 주를 들뜨게 했다.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금요일 아침, 드디어 꼬물이는 잠이 덜 깬 눈으로 핑쿠 선물을 안아 들었다. 조카딸이 그 바쁜 출근 시간에 실시간으로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잠옷 입고 앉아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아이의 집중한 듯 튀어 나온 입술이 핑쿠 가방 속으로 들어갈 거 같았다. 지금 만큼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에서 핑쿠 가방과 꼬물이 둘만 있는 느낌, 그거면 충분했다.


유치원까지 메고 가려던 핑쿠 가방을 현관에 얌전히 벗어 두었단다. 갔다 오면 그대로 있을 거지?라고 물었다는 아이 말에 나도 그 핑쿠 가방이 되어 꼬물이의 하원을 기다렸다.


날은 어린이날인데 내가 선물을 받은 거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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