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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라는 이름으로

나는 사실 제사 지내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집성촌에서 자란 기억 때문인지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제사가 있어 큰 집, 작은 집 다니며 제사를 지냈다. 내가 지낸 건 없고 학교 갔다 오면 김이 술술 나오는 떡 나오고 고소한 전 나오고 잠 오는 눈 비비고 있으면 비빔밥까지 나왔다. 각자 집으로 갈 때는 머리에 한 대야 음식을 담아 이고 헤어졌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까지도 우리 집 밥상에는 비빔밥에 탕국, 생선구이 등이 올라왔다. 그러니 나에게는 제사는 곧 잔치의 다른 이름이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제사는 다른 문제였다. 다들 직장 다니며 사는 곳도 다르니 시댁에 모이려면 동동거리며 조퇴를 해야 했었다. 그래도 큰형님이 며칠에 걸쳐 다 준비해 놓으면 나는 당일 오후 몸 쓰는 일이 다였으니 수고랄 것도 없었다. 아무리 빨리 지내고 온다고 해도 집에 오면 새벽 1~2시. 다음날 출근이 뒷덜미를 잡아도 잠은 쉬이 들지 않고 길 때는 3일 이상 피곤한 후유증이 갔었다.

그래도 친정에서 보고 자란 거에 비하면 시댁은 다소 수월한 편이고 횟수도 적었다. 그럼에도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동그랑땡 속에 뒤집어가며 구워지고 문어 다리만큼 꼬이고 꼬인 속사정들이 제사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제사 지내는 걸 여전히 좋아한다. 공식적으로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고 워낙 솜씨 좋은 형님들의 음식들도 실컷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친정 식구들보다 더 끈끈해진 형님들과의 수다가 공식적으로 마음껏 허용된 날이라 그것도 좋다. 퇴직을 하고 보니 제사는 마음 편한 가족 행사로 다가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일곱 가지 전과 열 마리 생선을 다 굽고도 이어져 나온다. 제사 아니어도 밥 먹고 카페에서 차 마시고 만날 수도 있지만 이 하루의 끝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아 나름 좋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주관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가능한 생각이다.


드디어 큰형님이 힘에 부친다는 말씀을 하셨다. 요즘 안 지내는 곳도 많던데 줄이자는 의견이시다. 나도 동감이다. 주관하는 분이 직접 말씀하긴 그러니 내가 잔다르크처럼 의제를 올렸다. 그 자리에서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말이 없다.

- 그래, 부모님 제사이니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지.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 그래도 일은 우리가 다 하는데. 요즘은 밤도 안 치면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전화도 잘 안 하던 남편이 돌아가시니 유독 효자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 가지는 의문인지 모르겠다.


새벽 1시, 밤하늘에 별보다는 아파트에 불 켜진 집이 눈에 들어온다.

- 저 집도 오늘 제사려나?

가신 이는 말이 없는데 산 자들은 오늘도 제사라는 이름으로 지지고 볶으며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고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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