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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산쟁이와 로드매니저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100대 명산을 기어코 다 오르리라 다짐을 했단다. 같이 사는 남편 이야기다. 처음에는 같이 인근의 산을 다녔었다. 쌕쌕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어찌어찌 따라 올라갔다. 그래도 정상에서 먹는 김밥이며 풍경 위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럴만한 보상을 주었다. 오르막길은 그래도 버틸 수 있었는데 하산길의 무릎 통증은 더 이상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평지에서도 절뚝거리며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예비산악인 대열에서 면제가 되었다.


노답산쟁이님은 한동안 혼자서 인근의 산을 전부 훑고 다녔다. 본인 말로는 진정한 산악인은 아니란다.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뒤 정상을 찍는 것을 선호하는 프로 인증러라는 거다. 하지만 새벽에 눈 비비며 나가고 하루에 2개의 산을 등산하는 열정을 보면 꼭 인증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퇴직할 무렵에는 가까운 산은 거의 다 올랐고 차량 이동 거리만 3시간이 넘는 곳들만 남았다. 운전은 가능하니 그때부터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로드매니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행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일부러도 가는 퇴직 기념 여행, 그래 나는 지금 맛집 기행 또는 도서관 기행을 가는 거야 라며 자신에게 말했다.


아침 일찍 나는 아이스박스에 간식 등을 담고 노답산쟁이는 자신의 굿즈로 온몸을 휘감으며 출발한다. 지역 선정은 산쟁이 담당, 그에 따른 숙소며 근처 맛집, 동선 등은 내 담당이다. 로드매니저의 대기 장소는 대부분 유명한 사찰 입구 주차장일 때가 많다. 대부분 관광지이니 화장실도 있고 편의점, 식당, 카페도 있어 나 혼자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 대부분이다. 어떤 때는 이런 곳에 절이 있다고? 싶은 곳에 남게 되어 서너 시간 때아닌 불공을 드리기도 한다.


이번 연휴엔 강원도 자연휴양림이었다. 등산부터 하산까지 노답산쟁이는 3시간 예상을 했다.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에 차량도 몇 대 없다. 숲 속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보니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흙과 자갈돌 사이로 푸릇푸릇 잔디도 올라와 있다. 트렁크에 있던 노란 돗자리를 깔아본다. 푹신하니 좋다. 차에 던져두었던 상비약 같은 책 한 권과 백팩 하나, 쿠션 하나 차례로 꺼내 놓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인근 집라인 출발장에서는 연신 음악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새가 갖가지 소리를 낸다. 이 좋은 평지를 두고 저 능선을 오르다니! 매번 같이 오지만 매번 이해는 안 된다.



- 왜 그렇게 산에 가시나요?

- 고요해서. 그리고 갔다 와도 아무 이상이 없는 내 몸이 좋아서


헤드밴드가 물수건이 다 돼서야 내려오는 노답산쟁이를 조수석에 싣고 검색해 둔 식당으로 간다. 다슬기해장국에 고추장제육볶음을 부들부들한 상추에 싸서 먹는 일은 산쟁이나 로드매니저나 똑같이 행복한 일이다.


100대 명산의 마지막 산은 로드매니저도 친히 이 몸을 이끌고 같이 올라가 볼 참이다. 白이라고 쓰인 백설기도 준비해서 백팩에 넣어가리라. 그때 정상에서 만날 또 다른 산쟁이들께 나눠 줄 참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쓸데없는 뿌듯함은 어디에서 솟아나는 지 그 또한 의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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