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의 남편들을, 우리의 수다 속에 한 번씩은 꼭 등장하던 그 남편들을 처음으로 모두 만나 보았다. 두 달 전, 남해로 1박 2일 부부 동반 여행을 처음 제안한 친구도 설마 되겠어? 하며 절대 부담 갖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도 이야기는 해 보겠지만 남편이 가려고 할까? 생각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 친구들이야 어느 정도 알지만 남편들끼리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말 그대로 생면부지였다. 근데 의외로 별 망설임도 없이
- 가보지 뭐.
한다. 나머지 친구들 남편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네 쌍, 여덟 명의 부부 동반 여행은 기획력 달인 친구의 주도로 계획은 브레이크 없이 내달렸다. 그제야 친구들이 모두 김 씨 성을 가진 남편들과 살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그때부터 이 모임을 포킴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간다고는 했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남편도 은근 긴장되는 눈치였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있다. 마치 사교계에 데뷔하는 나타샤처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부러운 일이다. 등산 장비는 잠시 내려두고 구석에 세워 두었던 골프채를 꺼내어 연습도 하고 내가 골라 준 새 옷도 신경 써서 입어보곤 했다.
-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라는 한 친구의 말처럼 드디어 포킴스 여행 당일, 카페에서 만난 첫 만남에 남편은 약간 긴장한 듯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내리쬐는 남해의 땡볕 아래 서로 안내해 주며 격려해 준 남편들끼리의 첫 라운딩을 마치고 함박웃음으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 순간, 새 학교 적응 잘하고 오는 아들 맞이하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밤새 이어진 식사와 음주, 서로 알고 있던 결혼 전 연애 이야기부터 궁금했던 최근의 일까지, 1박 2일이 모자라 결국 두 번째 모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포킴스 입에서 먼저 나왔다. 만나기 전 걱정은 어느새 새로운 사람과의 기분 좋은 친교로 바뀌어 점점 높아져 가는 남편의 목소리를 걱정해야 했다. 나타샤의 사교계 데뷔 따위는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술이 들어갈수록 그동안 못했던 배우자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이 툭 튀어나오기도 하고 불쑥 눈물을 보인 친구도 있었고 슬며시 시작된 노래 한 구절이 떼창으로 변하는 반가움을 만나기도 했다.
- 그래, 누구의 아내, 남편이기 전에 같은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었지!
마치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프지도 않았고 힘든 일도 없었다는 듯, 처음 만난 스무 살의 그 언저리로 여덟 명 모두는 시간 여행을 했다. 내 친구들이 왜 좋은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들이 누구를 만나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 모든 것들이 여름밤의 별자리처럼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우리의 모습도 검푸른 바다 위 그 별자리 속에 살짝 넣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