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일장수와 빵장수

월요일마다 아파트 내에서 알뜰장터가 열린다. 직장을 다닐 땐 늘 5시 넘어 파장 분위기에서 만나던 장터라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온라인 구입과 배달이 워낙 편하다 보니 나의 주거래 시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새롭게 알뜰 장터의 진정한 세계를 알고 난 후 나는 월요일만 기다리게 되었다. 9시를 넘기면 전기설비부터 시작되고 판매대가 펼쳐지고 물건을 실은 차량들이 임시로 아파트 내에 들어온다. 그 차량에서 내리는 물건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히 과일장수의 거대한 냉장탑차는 정말 저게 다 팔릴까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더 놀라운 건 탑차에서 박스를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손님들은 줄을 서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진열은 시작도 못했는데 손님들은 과일 종류만 확인하고 그냥 박스째 달라고 한다. 그래도 사장님은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며 손님이 들고 가기 좋게 봉지에 담아준다. 박스는 내려지기도 전에 그렇게 빈 박스가 되어 던져진다. 몰려드는 손님들 속에 과일의 반 이상이 12시도 되기 전에 다 팔렸다. 조금만 늦게 가면 대부분의 종류는 볼 수도 없고 그러니 살 수도 없었다.


느긋하게 1시쯤 갔다가 남아 있는 복숭아 몇 개를 떨이처럼 사 왔다. 그렇다고 절대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다. 과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과일 장수는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팔지 않았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팔 수 없단다. 사 온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여기가 과수원이고 여기가 무릉도원이었다. 과일 볼 줄 모르고 과일 맛 잘 모르지만 이게 복숭아지 싶었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하루 종일 땀범벅이다. 그래도 싱글싱글 잘 웃는다. 사이사이 과일 몇 조각을 나누어 같은 장터 사장님들과 함께 먹는다. 다 팔린 과일의 상자들이 사장님 뒤로 탑을 이뤄 쌓일수록 더 깍듯하고 더 웃는다. 누구보다 먼저 가게 차양을 접고 정리를 한 후 동료 사장님들께 퇴근 인사를 건넨다. 물론 던져두었던 상자들은 깔끔히 정리해서 있었던 티도 안 나게 한다.


장터가 그렇듯 어디 과일만 사게 두는가? 현금 두둑이 들고 이것저것, 봉지봉지, 주렁주렁 사 본다. 그러다 맛있어 보이는 꽈배기를 사려니 사장님이 없다. 나를 본 다른 사장님이 빵집 사장님을 불러준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셨는데 꽈배기를 담는 동안 누가 또 이분을 부르신다.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전깃줄이 꼬인 듯한데 모두 빵집 사장님을 보고 있었다.


- 제 전깃줄 아닌데요.

그래도 다른 사장님들이 뭐라 하니 마지못해 가본다. 결국 빵집으로 연결된 전깃줄이었다. 뭐라 툭툭거리더니 대충 던져놓고 다시 온다. 꽈배기를 사 오는 그 짧은 동안, 고소하고 쫄깃할 것 같던 꽈배기에 대한 기대는 이미 낮아졌다. 역시나 먹어본 꽈배기는 식어있었고 질겼다. 우리 집에 온 빵이나 떡 중에 제 모습으로 다시 나간 역사가 없는데 그 집 꽈배기는 온전히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졌다. 그 후로 꽈배기를 사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같은 공간, 같은 조건에서 누구는 분명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 누구는 덥고 힘든 노점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목표를 이루는 순간을 보는 것은 쉬워 보이고 부러워 보인다. 그 순간을 위해 삼켰을 새벽의 하품, 바위보다 더 무거웠을 아침 눈꺼풀, 티셔츠 아래로 땀이 되어 흐르지 않고는 못 배길 여름 한낮이 아삭이는 사과 한 알, 까만 포도 한 송이 뒤에 오롯이 숨어있다. 나는 그걸 돈을 주고 사 온 것이다. 그런 분들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앞으로도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월요일, 나는 지금 과일 사러 간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내 친구들의 남편들을 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