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거짓말 같은 9월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내 행복의 절정을 기다렸다가 휙 낚아채가기라도 하듯, 그리고
- 옛다! 넌 이거나 뒤집어쓰고 있어라!
하듯 커다랗고 시커먼 장막을 던져놓았다. 나는 지금 그 장막 아래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다. 암중모색, 아직 모색은 못하고 있으니 암중에 있다고 할 것이다. 행동반경은 최소화되고 어딘가에게서 올 자극반응도 덜 받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줄 친절이나 이해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생경하다. 물 많은 저수지인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알고 보니 깡마른 저수지 흙바닥이었다. 그렇게 작은 것에도 행복을 잘 찾아낸다고 흥얼거렸던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숨었나.
처음으로 예전에 다니던 직장이 생각났다.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와 익숙함 속에서 의미 있는 일들로 흘러갈 시간이 필요한데 그곳이 직장이었다. 직장이 나를 힘들게 한 적도 많지만 억지로라도 일에 매달리게 하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흘러가게 하는 것도 직장이었다. 집이 아닌 어딘가로 출근하고 싶었다. 퇴직 후 내가 직장으로 생각했던 글쓰기는 여전히 나에게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무의식적으로 뭔가 하고 있다는 위안을 줄 수 있는 수준이나 단계가 아니었다. 그럭저럭한 나의 글쓰기 수준이 직장 때문이 아니었음도 명확하다.
아침을 먹고도 무기력이 나를 한참이나 침대에 누워있게 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축축하게 이불을 덮어준다. 다행인지 진행자의 목소리가 침잠한다. 몇 시간 전에 빠져나온 침대 위에 이불처럼 널부려져 있다. 그래도 된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나에게 도닥여도 본다.
암중에 있으면서 하고 있는 것도 있다. 대충이지만 눈은 책을 향하고 귀는 음악을 흘려듣는다. 암중에 오롯이 남은 두 가지는 책과 음악이다. 아주 깜깜하면 그건 좀 무서우니 나름 켜 놓은 등불 같은 거다.
초록지붕 집에 입양된 줄 알았던 빨간머리 앤은 다음날 마차를 타고 다시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앤은 밤새 절망의 구렁텅이에 있었다. 모든 희망은 사라졌고 마차는 출발했다. 그러자 아홉 살의 앤은 상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릴라에게 말했다.
- 이 순간을 즐기기로 결심했어요. 보육원에서는 마차 탈 일이 별로 없으니 지금 마차 타는 것만 생각할래요.
아홉 살 앤도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데 그보다 50년이나 더 살아 본 내가 나에게 온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못 볼 걸 본 듯 불편해하고 떨쳐버리려 하고 있다.
- 이 순간을 느끼기로 결심했어요. 살면서 깜깜한 장막 속에 던져질 때가 있잖아요?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살펴볼래요.
나도 마차를 타는 일에만 집중해 볼 생각이다. 그러다 모색이 가능하면 할 것이다. 단, 암중모색은 당분간이어야 할 것이고 그러리라 믿어보는 건 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