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건강검진을 했다. 기본 검사 더하기 피검사 몇 가지. 순조로운 검사 과정, 피 뽑기도 한 번에 성공하고 별생각 없이 키, 체중 측정기에 올라섰는데
- 체중은 빠지고 키가 자라셨네요. 무슨 운동하세요?
몸무게 빠진 건 알고 있었지만 키가 자라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 그럴 리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가 되물었다. 아침 금식에 약간 기운 빠진 멍한 상태로 올라섰던 키, 몸무게 측정이라 까치발을 하지도 않았고 체중이야 빠진 걸 알고 있었으니 굳이 숨을 후-웁 하고 들이마신 후 참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돌아서 나오다 차트를 내 눈으로 확인한다. 진짜 키가 자랐다. 그래 봐야 일점 몇 센티이지만 이게 뒷자리에 가만히 붙어서 끝자리를 두 번이나 바꿔 놓았다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알아서 사사오입해서 일 센티미터 더 높게 말하던 나의 키를 이제 당당히 이 센티미터 올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아까 좀 신경 써서 허리를 쭉 세워볼 걸 그랬나?
침침해지는 눈으로 시력검사에 정답을 맞히려 애쓰다가, 꽉 끼는 헤드셋을 쓴 청력 검사의 압박 중에도 키 생각을 했다. 욕심이 슬슬 물음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대체 왜? 측정기는 더 정확해졌을테고 정수리에 볼륨을 넣어 온 것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그러고 보니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서도 키가 큰 거 아니냐는 질문을 들었었다. 체중이 좀 빠져서 그래 보이겠지 하며 그때도 그럴 리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 진지해졌다. 세 번이 겹치면 우연 아니라고 했다. 그 세 번째를 하루의 끝, 자기 전에 기어이 발견해 내었다.
잠들기 전 요가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 아! 이거다
싶었다. 하루 요가 30분. 워낙 동영상이 좋게 나오다 보니 몇 년 전 슬슬 따라 하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9개월 전부터이다. 잠들기 전 했더니 유난히 숙면에 도움이 되는 걸 느꼈다. 발끝 가득 몰려오는 노곤함이 잠으로 빠져들기 쉽게 해 주었다. 그게 좋아서 지속하던 요가 9개월, 특별히 어려운 수준도 아닌 누워서 까딱까딱 하는 것만 하다가 요즘은 그래도 약간의 발전이 있어 초급에서 중급을 오르내리고 있다.
- 그래, 나름 발전하고 있었어.
뻣뻣하던 허리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두 손으로 발목도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번에 넘어가지 않던 쟁기자세도 누워서 코어 힘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몸이 나름대로 열심히 유연해지거나 근력이 생기고 있던 셈이었다. 내가 모르는, 혹은 몰랐던 무언가가 슬금슬금 척추로 모여들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척추부근을 늘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은 나에게 확증이 되어야 했다.
어느새 이런 여유에 익숙해져 이것이 얼마나 바라던 상황인지, 꿈꾸던 이상인지 가끔씩 잊기도 하지만 운동을 일 삼아, 일을 운동 삼아 하리라던 나의 생활에는 언제나 요가가 있었다. 그게 심증만으로 남을 키 크기의 원인일지라도.
- 오늘도 요가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요가 동영상의 마지막 멘트가 가을비처럼 온몸을 말캉말캉하게 해 준다.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나의 키를 위해서라도 나의 요가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