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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도모해 보고 싶으신가요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도모헌, 시장님들이 관사로 사용해 오던 공간을 새롭게 단장해서 시민들에게 오픈한 곳이다. 무언가를, 무엇이든 도모하라는 뜻으로 지은 도모헌이라는 이름도 좋고 소개된 카페의 커피 맛도 좋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마침 1주년 개관 기념 공연을 소소풍이라는 잔디광장에서 한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평일 오전 10시, 시민 70명 초대였다. 나의 접수도 잘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홈페이지에 확인을 하고 당일 10시 도모헌으로 향했다.


- 우와, 나에게도 이런 당첨의 기회가 오는구나.

하며 주차까지 잘했지만 행사장 입구에서 난 사실 당첨자가 아님을 확인했다. 접수는 잘 완료되었으나 추첨에는 탈락이었고 당첨자는 어제 따로 문자가 갔단다. 그래도 자유 산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해서


- 그것도 좋네요

하며 행사가 진행 중인 도모헌 이곳저곳을 마음 편하게 둘러보았다. 여름과 가을 사이, 구름과 비의 중간에서 상사화는 피어나고 나무들은 물들어 가고 있었다. 송중기 씨와 이성민 씨가 연기했던 관사는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품위가 있었고 지붕과 테라스 사이 뚫린 공간을 통해 습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솔깃하게 드나들었다. 행사에서는 지난 1년간, 옛 시장 관사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기까지 격려와 서로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고 그래서 나도 여기 와볼 수 있는 것이니 그동안 애쓴 사람들, 오늘 애쓰고 있는 공무원들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 언젠가는 생필품도 예술가에게 주문하는 날이 올 것이다

요제프 호프만의 말처럼 이미 예술은 생활 속 작은 물건에도 깃들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특히 좋은 건축은 그 속에 머무르는 사람을 편안하게, 너그럽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필품이 예술품이 된 시대, 사람들이 멋진 카페를 가고 좋은 풍경을 가진 장소를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 이유는 그 공간을 커피에 담아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도모할 수 있는 도모헌에서 결국 일행은 점심 식사로 슴슴하고 담백한 안동칼국시를 도모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바로 옆 빵집에서 사람들이 오픈런을 대기하고 있다. 행사 지원을 위해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이 무슨 일 있냐며 다가왔고


- 이 집 빵이 맛있어서요. 아직 문 열려면 1분 남았어요

라는 말에 웃으며 돌아선다. 하긴 엄청난 일이 일어나긴 했다. 10분 만에 준비한 빵이 다 팔리는 기적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의기양양하게 한 봉지 가득 빵을 사 들고 돌아오는 오후, 오늘은 정말 모든 일이 잘 도모되었다고 깔깔 웃어본다. 당첨이 아니어도 당당하게 일행을 데려온 일, 그리고 느긋하게 도모헌을 둘러본 일, 피고 있는 상사화를 만난 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점심을 먹은 일, 빵집 오픈런을 해 본 일 등 오늘 도모한 일은 모두 상서로이 잘 이루어졌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많지만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한 것도 참 많다고 했던 나의 글을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잔잔한 음악, 향긋한 커피,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동차, 손에 감기는 가방, 매일 색을 바꾸는 나무가 좋았다. 이제 건축이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공간들도 넣어본다. 그리고 그 공간은 사람이 머무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당신은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도모해 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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