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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상달(上月)이라


친구가 무슨 말끝에 10월은 상달이니 자주 만나자는 말을 했다. 상달은 가장 높은 달, 가장 큰 달을 의미하기도 하고 추석도 있고 모든 과일이나 열매가 익어가는 좋은 계절이다 보니 예부터 있던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말이 참 좋아서 입에 맴돌았다. 10월은 상달이라 좋은 일이 가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9월을 보내는 마음이 그래서 더 조금 더 가벼웠는지도 모르겠다.


10월은 상달이라 오랜만에 출근을 했다. 책임감을 내려놓고 만난 아이들이 진심으로 귀여웠다. 며칠만 있다가 가는 나에게도 잘 보이려 애쓰는 그 모습들이 참 아이답고 예뻤다. 5일은 처음 만난 사람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이어지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간만에 먹는 급식도 맛있었고 리코더 연주에 손으로 지휘를 하며 작은 합주에 행복하기도 했다. 국어 시간엔 발표하느라 쉬는 시간을 조금 가져다 쓰기도 했다.

- 강사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 스스로 나의 본분을 각인시키며 나오려던 옛 습관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정이 들어 헤어지던 마지막 날은 약간 기대를 했었다.

- 방과후 수업 마치고 교실에 잠깐 왔다 갈지도 몰라.

물론 그런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런 기대를 한 내 모습에 살짝 미소가 나왔다.


10월은 상달이라 친척을 많이 만났다. 연휴 첫날, 집으로 온 아들이 친척을 만나고 싶다는 말에 시댁이며 친정을 갔다. 몇 년 전부터 차례도 없애고 제사도 없던 터라 명절에 각자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기다렸다는 듯 같이 밥을 먹고 카페도 갔다. 비가 내리는 카페에서 수다는 끝이 없었고 서로 지내 온 시간을 아는 사람들끼리의 통하는 무엇들이 커피 향기 속에,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10월은 상달이라 명절을 앞둔 친정의 시골 장터에는 옛날에 느끼던 가벼운 흥분들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친척들 집에 작은 선물을 돌리며 나도 옛 기분도 내어 보았다. 고소한 참기름이 내 손에 쥐어지고 빨간 고춧가루가 차 트렁크에 채워졌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 사이로 귀하고 어여쁜 증손주들이 따박따박 걸음을 걸으며 왕할머니를 찾아오고 어느새 쑥 자란 손녀들은 자전거를 씽씽 탔다.


- 엄마, 옛날에 아버지 계실 때는 장도 많이 보고 선물도 진짜 많이 들어왔는데요

하니 노모의 얼굴에 살짝 명절이 지나간다.

- 그럼, 설탕이며 밀가루며 멸치며 포대째 들어왔지.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장만한 생선들이 가을볕에 까들까들하게 말라가고 있었고 단감이 익는 만큼 내 마음도 발갛게 익어갔다. 마루 끝에는 누군가 두고 간 선물들이 여기저기 올려져 있고 그중 몇 개는 내가 들고 또 다른 집으로 심부름을 갔었다. 그러다 저 멀리 들녘의 벼 사이로 가을 해가 내려갈 때쯤 큰오빠 차가 보이면 콩닥콩닥 마음은 더 뛰었다. 두툼하게 잘 익은 갈치를 저녁 밥상에 올리며 큰아들 얼굴을 바라보던 그때의 엄마가 아마 엄마 인생의 최절정이었으리라.


10월은 상달이라 내 마음을 달에게 푹 기대어 본다. 문득 저 달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났다면 그건 저 달을 보고 빌었던 엄마의 수많은 마음이 가득 박혀 있어서리라. 10월은 상달이라 과학보다는 나의 상상 속에 마음껏 헤엄치고 있어도 좋은 달이니 그리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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