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걷어 올리는 일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50여 년 넘게 당연하게 내렸던 그 뿌리들을 두 달 안에 걷어 들이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 준비도 두 번은 못 하듯 해외 이사도 두 번 할 일은 못 되는 것 같았다.


먼저 가지고 있던 가재도구며 살림살이를 정리해야 했다. 함께 해외로 가야 할 것들,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것들, 그리고 버려야 할 것들! 처음엔 버리는 물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매주 버리는 요일에 맞춰 버리고 또 버렸다. 처음엔 버리려 했던 것들 중 몇몇은 살아남아 이곳에 같이 온 물건도 있다.


다음은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물건들! 물건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쓰던 것이고 있던 것이니 조심스러웠다. 반가워하는 의사를 확인하면 닦고 매만져 알맞게 포장한 뒤 직접 만나서 전달했다. 사실 이게 버리는 작업보다 더 힘들었다. 버릴 때는 그냥 버릴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줄 때는 그냥 줄 수 없는 게 쓰던 물건이었다. 그래도 반가워해 주고 새로운 곳에서 어울리게 사용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받을 때면 뿌듯함도 있었다.


이제 함께 가야 할 물건들은 한 달 이상의 장기간 체류와 보관을 버틸 수 있게 꼼꼼히 확인하고 짐을 쌌다. 눈에 보이는 뿌리와 가지인 가재도구를 정리하는 일 못지않게 시간이 걸리는 일은 서류상 정리할 일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뿌리들이 굵고 가늘게 여기저기 내려져 있었다. 걷어 올리고 자르고 옮겨 두어야 할 뿌리들은 따로 심어야 했다. 한 달 안에 이사를 세 번 하는 느낌은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거리를 걸어 다니던 평범한 하루를 아무 불편 없이 살게 했던 건 나의 수많은 뿌리였음을 체득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떠나기 전날은 너무 지쳐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저녁까지 잘 먹고 웃으며 헤어졌던 언니의 문자 한 통이 마지막 마음을 무너뜨렸다.


- 나 아마 내일은 울 거 같아.


그리 먼 나라를 가는 것도 아닌데, 가슴 아래로 못 본 척하고 있었던 감정 하나가 나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며 치고 올라왔다.


- 왜 이 시간에 다른 나라를 가려고 하는 거지

- 그냥 여기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잖아

- 안 겪어도 될 이런 슬프거나 힘든 감정을 왜 또 보고 느끼려 하는 거지


나의 가장 굵고 끊을 수 없는 뿌리는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사람이었다. 그들을 당장 내일부터 못 본다고 생각하니 다 잘랐던 가재도구며 서류상의 뿌리들이 후드득후드득 미친 듯이 제자리로 다시 파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 끝난 줄 알았지? 하며 웃으며 다시 내 속으로 뿌리내리는 꿈들로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을 맞았다.


다시 돌아올 곳임에도, 3년의 시간이 흐르면 또 일상처럼 와 있을 곳임에도 눈도 안 뜬 새벽 거리를 보고 또 보았다. 미처 다 자르지 못한 뿌리가 내 꽁무니를 따라오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더 이상 정리할 마음도, 힘도 없었던 나는 어두운 새벽을 핑계 대며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라, 일본 센다이로 향하는 첫 번째 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