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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Mar 15. 2024

만약에 그랬다면...

핑계는 아니지만...

뭐 나이 마흔넷이 된 지금에 와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와서 많이 동의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엄청난 복이라는 거다. 어렸을 적에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긍정과 희망 때문에 내가 노력만 하면 밝은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날들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과거를 돌아보니 결핍이 비교적 많았던 나의 생애였다. 아버지는 가장의 기능이 아닌 사람의 기능을 하지 못했고 책임감이라던가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없었다. 오로지 삶을 의탁하는 것은 '소주' 그것 하나였다. 그것만 있으면 삶의 무게를 언제든 내팽개쳐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유년시절의 나는 그런 어른을 보며 본받아야 할 어른의 모습을 학습하지 못했다. 


그러한 가정에서 내가 느끼는 확연한 감정은 오로지 불안이었다. 삶의 안정과 안락의 장소가 되어야 할 가정이 또 다른 공포에 가까운 장소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든 눈치를 봐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 충돌을 빚을지 몰랐고 그런 부모 앞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유년의 나의 삶은 축복받지 못함이 당연했다.


그런 삶이 어머니도 싫었는지 아니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었는지 훌쩍 나와 아버지 곁을 소식도 없이 떠나버렸다. 몇 년간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따뜻한 엄마의 품도 느낄 수 없었다. 다섯 살의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외로움과 고통의 크기가 아니었다. 생살을 인두로 지지는 고통을 다섯 살의 아이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한 불안정이 늘 나에게 있다 보니 학교에서의 날들도 그냥 버티는 삶이었다. 버티는 자에게 마음에 여유란 것은 없다. 여유가 없으니 공부도 당연히 뒤처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바보로 한동안 인식하며 살았다. 가난과 무식이 결합이 된 나는 불량학생들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그들은 마음껏 나를 유린하고 괴롭혔다.

만약에 내가 본받을 만한 멋진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정을 있는 힘을 다해 양육하고 아내를 존중하며 밖은 전쟁이고 지옥일지 모르나 그 안에서는 언제든 안락함을 제공하는 가정을 만드는 아버지였다면 나도 아마 이렇게 예민한 어른으로 성장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저자세를 하며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버지의 응원과 학습아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가정에서 사랑받은 테가 제법 나면 그렇게 당당함을 내면에 가지고 있었다면 악당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배우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먼저 생각해서 일찌감치 그 꿈이야 포기해 버리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배웠다. 장난감도 간절히 가져보고 싶었던 것을 가져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화려한 장난감 앞에서 떼를 써보는 아이가 되어보지 못했다. 자신의 부모의 가난을 뼛속 깊이 인정하며 사는 삶은 무겁고 슬프다. 나의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그런 삶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전부는 진통제 같은 것들이었다. 당장의 쾌락과 당장의 즐거움을 미래와 맞바꾸곤 했다. 당장에 나를 달래줄 수 있는 것들을 찾는 삶... 마음에 통증이 가득한데 그것을 억누르고 해야 하는 공부는 그리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골치 아픈 행동은 나의 진통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당장의 따스함이 있는 곳이라면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팽개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당장의 친밀함이 있는 곳이라면 난 뭐라도 버릴 수 있었다.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를 위한 투자와 시간을 버렸고 젊음을 버렸고 공부를 버렸다. 그렇게 진통제를 맞아가며 날들을 살아냈다. 얼마 전 어떤 방송인이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엄청난 복이란 말이 인생의 반환점을 돈 지금에야 실감이 된다. 삶의 출발선이 다르며 신은 러닝화가 다르고 붙은 코치진들이 다르다. 결핍으로 인해 우울할 시간은 소량이며 풍성함과 그 지원으로 인한 결과가 줄 열매들이 풍성하기에 확신 있게 그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런 열매를 쟁취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열매를 쟁취한 사람들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오늘은 문득 비관적인 글을 써보고 싶었다. 토해내고 싶고 원망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 이룰 사회와 공동체는 어떤 곳일까? 풍성함과 따뜻함이 자리 잡은 자리일까? 든든한 위로가 있는 곳일까?


물론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다만 바라건대...


"이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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