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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스탄트 Jan 18. 2024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기억은

여전히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오후 출근길. 나만의 힐링공간 차 안은 말 그대로 치유의 공간이다. 따뜻하게 덥혀진 시트와 핸들, 오늘의 기분에 따라 선곡된 플래이 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듣기 좋은 음악은 딱 기분 좋게 하는 볼륨 크기에 맞춰져 있다. 이런 기분 좋은 옵션들이 맞춰진 상태라야 도로 위 무뢰한들이 앞길을 가로막아도 너그러이 용서 있다. 그러다 문득, 살면서 희열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성취감을 느끼고 그것을 끝냈을 때 희열을 느낀 일이 언제였지?
하는 A의 물음에 내 안의 B가 바로 답변하며 기억이 소환되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뭔지 모를 뭉클함에 그때의 감정이 기억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직업적 글쓰기를 트레이닝하고 있으므로 세심하게 기억해 보기로 작정했다. 그날의 그 공기와 주변의 온도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대학생이고 중간고사 조편성이 끝난 후 각 팀별 프로젝트를 해내야 하는 시기였다. 다양한 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우리 팀은 단편드라마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단편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고 나는 연출과 시나리오를 담당했다. 다른 팀원들은 대부분 나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라왔고 아마도 그들 중에는 이름만 올리는 것에 목적을 둔 사람도 몇몇 있었다. 나는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겉멋이 들어 예술혼을 불러와 작업하기보단 여전히 노는 게 제일 좋았기 때문에 시나리오는 뒷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체 스케줄을 체크하다 보니 시나리오가 나와야 하는 시기가 됐고 작품 촬영과 편집이 아주 빠듯하게 돌아갈 것이 예상되었다. 베짱이처럼 신나게 놀았던 대가였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고통 없이 결과가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야! 넌 계획형 인간인데 친구들과 그렇게 놀다간 분명 후회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함께 미친 듯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뜨겁게 빛나던 그날이 왔다. 

 

두툼한 모니터와 당시 고성능을 자랑하는 컴퓨터 본체도 내 머리만큼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그날만큼은 마치 예술만을 하며 살 것 같은 사람처럼 의자에서 거의 일어나질 않았다.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기승전결이 마치 하늘의 개시라도 받은양 주인공들의 대사가 술술 써졌던 것이다. 그렇게 밤을 새워 시나리오를 작성하다 보니 아침밥을 차리기 위해 부엌으로 나오는 엄마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빼꼼히 내방으로 들어와 밤샘했냐고 말하며 나가시는 엄마에게 나도 신기하다고 했었다. 창 밖으로는 동이 트기 시작했고 붉게 물드는 석양처럼 새벽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날 만큼은 마치 마감전날에 영감을 받아 미친 듯이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처럼 오로지 글쓰기에 몰입하여 써내려 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은 어떤 작가의 영혼이 나에게 들어와 있었던 것처럼 신명나게 타자를 쳤고 결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압력 밥솥의 취사 소리가 마치 기차 소리처럼 들렸고 솔솔 스며드는 밥냄새는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부분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신들린듯 글을 쓰다 아침밥은 챙겨 먹었던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대본은 하얀 A4용지에 뚜렷한 검정글씨로 탄생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첫 독자는 우리 팀원들이 되었다. 그 두툼한 완성본을 챙겨 학교로 가던 그 순간은 피곤함이 아닌 성취감이었다. 

각자의 역할을 맡은 팀원들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름만 올린 몇몇은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완성했냐며 연신 감탄했었고 그것이 진심이던 아니던 연출을 맡은 나는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 기간은 마치 스턴트맨이 곡예하듯이 열정적인 레디, 액션의 연속이었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철부지 예술가들이 뭔들 못하겠는가? 

편집을 하며 학교에서 밤샘도 했고 편집점이 계속 안 맞아 이상했던 날은 편집실에 귀신이 나타났다며 호들 갑을 떠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귀신을 보면 작품이 대박 난다고 하는 소리가 있었는데 정말 작품이 A플러스 점수를 받았다. 


다시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당시의 내가 귀엽고 웃기기도 하다. 어린 철부지 예술가들이라니.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나도 꽤 괜찮았지만 연출할 때의 그 만족감 때문에 프로듀서의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인생 2막을 생각하면 글쓰기의 희열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간절하게 바라본다. 

소속사가 생겨서 마감에 쫓겨야 멋진 작품이 나오는 것일까? 

아직은 직장을 다니며 글을 써야 하므로 최선을 다해 부캐를 살려보기로 한다. 


동트는 푸른빛과 주홍빛 사이의 경계가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는 듯 차갑고 뜨겁던 그 새벽의 느낌을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타자를 치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 야릇하게 노곤한 몸과 정신이 그립다...


* 사진출처 - Pixabay!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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