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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 Sep 10. 2020

서른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벌써 서른

더 빨리 나이가 먹고 싶었던 어릴 때가 그리워지면 '벌써 서른'이 실감난다. 

남들보기엔 그저 아줌마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이 아줌마가 서른의 나이를 감당하기엔 아직 덜 여문 듯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어느새 서른이 되어 버렸으니 김광석이 읊조리던 서른은 생경하다.


서른즈음에 비우는 법을 배운 그에게 감탄한다.

나의 서른은 아직 욕심으로 가득차있다.

인생에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한 걸 보니 아직 청춘의 늪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정신연령이 어려서 아직도 도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자신감보다는 이제 자존심이 되어버렸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는 소릴 들어본 적 없는데,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도 둔하다.


서른은 인생을 평가할 수 있을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겪는 현재의 서른은 애매하게 여물지 못한 풋사과같다. 


서른 즈음에 나는 결혼을 했다. 

그나마 나의 서른을 수식할 수 있는 경험이다.


결혼은 많은 부분의 변화를 가져온다. 

처음은 안정감,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꿈꾸던 나에게 나의 집이 생긴다는 것은 큰 의미였다. 독립할 용기가 없던 내가 알을 깨고 나온 시점은이 결혼이다. 결혼으로 내 집이 생긴 지금 나는 무척이나 생활에 안정감이 있다. 

우스운 얘기지만 몇번의 연애로 사랑을 불신했다. 물론 감정에 의지하는 것은 여전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결혼 이후 연애의 피로감이 사라졌다.

둘째는 배려심,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결혼해보는걸 추천한다. 남과 살아간다는 것은 공간을 쉐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부분의 희생이 필요하다. 나는 결혼 전까지 스스로 이기심이 크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배려심을 배웠다.

셋째는 무력감,

나는 내가 무력함을 결혼하면서 절감했다. 결혼 준비에는 돈이 많이 든다. 착실히 모았다는 막연한 생각은 현실 앞에서 무기가 될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혼수를 준비하면서 나는 처음 무력해졌다. 

내 경제력은 직장생활을 그만두면서도 바닥났다. 결혼이라는 이슈에 회사는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동안 남부러울 것 없었던 내가 처음 타의에 의해 직장을 관두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의 가치는 고작 이 정도에 불과했다.


이 밖에 결혼과 얽힌 사연들은 서른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서른은 아직 낯설다. 

자녀계획을 세울 때쯤 나는 다시 한 번 서른을 절감할까?


요새 슬슬 남편의 입질이 온다. 

밖에서 이름모를 아이들만 봐도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나는 경험으로 비롯해 성숙한다.


아줌마, 이제 서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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