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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Hwang Feb 14. 2020

청첩장

정호 안녕! 잘 지내나? 오랜만에 연락하네.



고등학교 동창 S에게 메세지가 왔다.


페이스북을 보고 결혼식 때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메세지를 읽지 않은 채로 두었다.


내일 답장 해야지, 하고 미룬 것이 어느덧 1주일이 지났고


이젠 답장을 하기에도 애매한 타이밍이 되었다.



추석에 부산에 내려가 친구들을 만나니 S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정호 니는 내일 안모이나? 니도 당연히 오는지 알았다”
“아, 누구누구 모이는데? 엄청 많이 모이는거 아니가?”
“4명 정도 부른 것 같던데”
“나는 축의금이 아까워서 안갈란다~ 밥 얻어 먹으면 결혼식 가야되잖아”



돌려받지 못할 축의금이 아깝다는 시덥잖은 핑계를 대고는 웃어 넘겼다.


그러고는 S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근데 걔는 정치 안하나? 왠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학생회장 때에는 뭔가 처세에 능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워낙 똑똑하기도 했으니까. 묘하게 반골기질도 있었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내 티셔츠에 그려진 에미넴을 보고는 자기가 에미넴을 엄청 좋아한다고 신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난 에미넴에 대해 알고있는 거라곤 영화 8마일이 다였지만(티셔츠에 그가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사주신 옷이었기 때문이라,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내가 8마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 친구에겐 퍽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8마일을 시작으로 영화이야기를 하다보니 S는 내가 어떻게 배우 이름들을 다 외우는지 신기해 했지만,


나는 사실 S가 그 많은 대외활동을 해내는게 더 신기했다.


S에게 나는 공부는 제껴두고 영화를 찍는 영화광이었을 것이고, 나에게 S는 머리 좋은 학생회장이었다.



몇 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엔 학점이 학고 직전이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에도 역시 S는 정치를 하려나.. 하고 생각했다.


몇 년 후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렸고, S는 취업을 했다고 들었다.



“현차 가서 돈 많이 벌고 잘 살걸. 그래도 우리중에 젤 먼저 결혼하네”



졸업을 하고 몇 년 동안 우리는 뭔가를 빗나갔던 것 같고,


아마도 내가 답장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S와 나의 관계 역시 빗나갈 것이다.


그래, 그렇게 자주 보던 사이는 아니니까, 하고 덤덤하게 생각하며 2주일 정도가 흘렀고


S에게 다시 메세지가 왔다.



정호 주말 잘 보내고 있나?
올가을 결혼하게 되었어.
결혼전 그간 고마웠던 분들 인사드리고 싶어, 추석에 모처럼 고등학교 친구들한테 식사 대접하고 싶어 연락했었어ㅋㅋ
자주 연락못하다 카톡 보낸게 너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불편했을 수 있겠다 싶네.. 미안하다. 그 말 하고 싶어 카톡했어.
그림 잘 보구 있어, 멋지고 자랑스럽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



메세지를 받고는


2008년 고등학생때 꿈꿔왔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내가 빗겨갔던 것들과 유대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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