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1
새 가계도를 찾겠다는 어떤 젊은 여자의 가출.
1일차
처음 혼자 경주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엄마는 누구 하나라도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는 단번에 싫다고 했었고, 그 이유를 묻는 말은 어물쩡 넘어가 답하지 않았다. 일기장을 보면 9월 8일에 혼자 경주에 가야겠다는 말이 쓰여 있다. 그냥 가야겠다고만 쓰여 있어서 나도 이유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혼자’인 시간이 필요해서, ‘경주’가 좋아서, 친구들이랑 갈 때는 인스타 맛집 밖엔 갈 수가 없었지만 나는 사실 그것보단 박물관이나 불국사에 가고 싶어서, 경주를 혼자 오롯이 느껴보고 싶어서, 내 방과 일상에서 잠시라도 떨어져 나와 있어보고 싶어서, 동네를 벗어나 걷고 읽고 쓰고 다시 걷고 읽고 쓰는 것은 혼자 일 때만 가능한 것이라서, 인생의 중요한 혹은 부질없는 이 공백기에 혼자 여행을 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서, 헤매는 청춘에겐 필요한 경험인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스물두 살이어서….
사실은 그냥 가출이다.
어느 날에는 ‘레아’라는 두 글자만 머리에 남은 채로 꿈에서 깬다. 원래는 꿈도 없이 푹 자기만 했던 내가, 지금보다 3살이 어리던 9월부터는 계속 이 지경이다.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 채 깜깜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잠에서 깬다. 매일이 그렇다.
엄밀히 따지자면 눈알에 묻어나온 파편들이 몇 가지 있긴 하다.
어떤 꿈에서 나는 산골 마을에 살고 있다. 무언가를 피해 숨었고 끝이 정해져 있는 생활이다. 그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또 사랑을 주고 시를 받고 또 시를 준다. 그러나 그 누군가를 그 산에 남겨두고 나는 거길 빠져나오는 것이 이 꿈의 결말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에 본 것이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여전히 선명하다. 그것은 산의 붉은 옆구리.
어떤 꿈에서는 내가 칠판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 그 사람이 쓴 ‘글의 둘레’라는 말만 잠에서 깬 내 방의 천장을 기어다닌다. 나는 서둘러 메모장을 켠 다음 ‘글의 둘레’를 어떤 리스트 밑으로 추가해놓는다. 그 리스트에는, 그러니까 ‘글의 둘레’ 위로는 옆구리가 붉은 산에 남은 사람과 주고받은 시를, 그 형체도 남지 않은 시를 떠올리는 회상이 남아있다.
홍도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는 면접의 면접관이 되어서 서류를 뒤적거리던 꿈도 있다. 홍도윤은 천재였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말로 입증할 줄은 몰라서 나는 애를 먹고 있었고, 홍도윤의 서류가 어떻게 생겼든 간에 그 꿈은 홍도윤 옆에 있던 김진형이 내 말투를 따라하며 귀엽다고 떠드는 데에 대고 내가 면접관에게 예를 갖추라고 소리 지르는 헛된 꿈이다. 김진형 앞에 앉기 훨씬 전부터, 내가 없는 위엄을 끌어다 쓸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게 억울해서, 그건 꿈이 아니라도 무엇과 닮아있어서, 우울한 기분이 곧장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그런가 하면, 어느 병원의 병원장에게서 직원들이 이상 행동을 한다는 수사 의뢰를 받은 탐정이었던 꿈도 있다. 직원들이 계속해서 건물 뒤쪽으로 의료 기기나 짐 따위를 옮겨 놓는 등의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이 포착되었는데 내가 조수 몇몇과 조사한 결과, 건물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을 눈치 챈 직원들이 병동부터 무너지게 만들려고 뒤쪽으로 하중을 싣는 거라는 진실이 밝혀진다. 나는 병원장에게 곧장 가 이 사실을 알리고, 병원장과 나는 로비 공간에서 이 사실을 모두에게 공표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직원들의 대장 격인 어떤 남자가 이걸 눈치채고, 내가 로비에서 ‘여러분!’ 하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 자기도 알아낸 게 있다며, 큰소리를 치려는 노력도 없이, 병원장과 그 비서가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떠벌린다. 사람들은 크지도 않은 그 소리에 동요한다. 나는
입닥치라고
입닥쳐
입다물어
입다물라고,
따위의 말들을 악을 써 가며 외친다. 목이 나가기 직전에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보탠다. 입 닥쳐! 하는 소리와 그 남자의 중얼거림이 싸우다가 결국 모두가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조용해진 틈에 내가 이상 행동을 하나씩 설명하고 빨리 이 건물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바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나도 옆사람이랑 손을 잡고 병원 건물을 빠져 나온다. 뒤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뛰고 있고 그 길을 나와 옆사람, 우리 둘은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이 부분부터는 조금 힘들어지는데, 맞지, 그런 대화를 하고. 그 숲길을 빠져나온 다음 우리는 우리 다음으로 나온 사람들을 한명씩 줄 세운다. 192명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나온 2명을 벤치 옆쪽에 우선 세우고, 정류장 쪽까지 쭉 길게 서 있으세요, 확인할게요, 한다. 그리고 잠에서 깬다. 그 날은 영화도 하나 보지 않고 잠든 날이었다. 극적인 상황을 겪고 난 가슴은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뛴다. 뛰어다닌 숲길이 아직도 뒤에 있는 것마냥 숨이 찬다.
그래서 ‘레아’는 누구였을까. 누구길래 이름 하나를 내 손에 턱 쥐어주고 자기는 꿈 속으로 다시 걸어가버렸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잡지 못했으면서 그 이름 두 글자만은 여기로 갖고 오는 데 성공한 걸까.
머리는 이런 질문들을 감당하지 못한다. 누구였고, 왜 거기였고, 어떻게 나는 다시 여기인지, 그런 것들은 ‘여기’서는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그냥 이불을 걷고 땅바닥에 맨발을 놓은 다음 한숨을 한번 쉬고 입을 헹구러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 지금보다 3살이 어리던 9월부터.
그건 H가 마침내 한국을 떠난 때이기도 하다.
아무튼, 몇 개의 파편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이 기억나지 않는 모험에 다녀온 피곤으로 시작된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진단은 뻔하고 무섭다. 무엇으로부터의 불안인지 정확히 알고 싶기도 하고, 알듯 하니 묻어두고 싶기도 하다. 묻어두고 싶을 때가 훨씬 자주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럴 때면 가출이 절실하다. 4박 5일짜리, 어디로 돌아올 지가 뻔히 정해져있는 가출이라도. 나에게는 새 가계도가 필요하다. 새것. 완전히 새것.
원래 있던 가계도는 어쩌고 나는 혼자다. 그게 아니라면, 비틀즈 LP 판을 품에 안은 채 복도에 서 있던 첫사랑이 정말로 비틀즈를 좋아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읽은 아침이. 그 아침이, 내게 영영 남아있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혼자임이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오면 그때. 그 아침을 꺼내 놓으리라. 그리고 빵과 빵 사이에 끼워넣은 다음 우걱대며 먹겠노라.
나는 혼자라서, 지금 당장 가계도가 필요하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목숨을 구해준 철학자와 이야기꾼과 양성적인 괴짜들로, 앙상한 가계도를 채워나가야만 한다.* 뛰쳐나가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경주에 있다. 고향을 제외하고 가장 사랑하는 도시.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이지만 나는 이 도시를 조금 안다. 망망대해에서 시작하지 않는 나의 겁을 부디 이해해주길.
*제사 크리스핀의 책 <죽은 숙녀들의 사회>에 쓰인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