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7시가 되면 어느 대학교 정문 앞에 세 사람이 모인다. 세 사람은 말없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하고 다리를 옆으로 쭉쭉 늘리다 발목을 이리저리 굴린다. 각자의 몸풀기를 마친 뒤에는 함께 스무 번의 팔 벌려 뛰기를 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휴대폰을 꺼내 러닝 어플을 켠다. 그렇게 학교 정문에서부터 창경궁을 지나 종묘를 찍고 되돌아오는 달리기가 시작된다. ‘하,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짧은 후회와 함께 쉬지 않고 20분을 달리는 루트에 들어선다.
막상 달리기가 시작되면 좀 전의 후회는 사라진다. 달리기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약속을 한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모이지만 달리는 것은 혼자의 일이다. 자신의 힘만으로 3.5km를 전부 달려야 끝이 난다.
처음은 언제나 패기롭다. 체력의 한계를 까먹고 무리하게 달리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몸에 힘이 풀린다. 조금만 지나면 나올 신호등을 생각하며 참고 다리를 움직인다. 그렇게 두 번의 신호등을 지나 종묘 앞을 들러 창경궁을 지날 때쯤이면 더 이상 못 뛰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멈춰버리면 지금까지 뛴 게 억울할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달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학교 정문이 보인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젊음이란 그런 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몸이란 뭘까. 의외로 나의 몸은 내가 모르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나약한 건 마음이었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하지말 걸 후회하는 것도, 달리는 와중에 그만 뛸까 생각하는 것도 결국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갈팡질팡하는 마음과는 달리 나의 몸은 마음이 아무리 그만이라고 말해도 다리를 움직이길 멈추지 않았다.
2개월을 꾸준히 달리다보니 몸에도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달리는 보폭은 넓어졌고 몸은 위로 붕 떠올랐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게 된다. 몸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알아챈다. 글면 나는 더 자신감이 붙는다. 하기 싫다는 마음은 신기하다로 바뀌고, 신기하다는 마음은 재미있다로 변해 결국엔 잘하고 싶다가 된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리기가 끝나고 숨고르기를 한 후에 나누는 우리의 대화는 매일 똑같다. “오늘도 죽을 뻔 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지며 또 이렇게 말한다. “수고했다, 내일 보자.”
우리는 내일도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곳에 모여 각자의 달리기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