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로 배우는 몸
요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유튜버 때문이었다. 베를린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그의 본래(?) 직업은 요가 선생님이다. 업로드된 동영상의 스크롤을 내리면 과거에 올렸던 요가 영상도 더러 있었다. 영상을 틀고 따라 하다보니 꽤 나와 잘맞는 운동인 것 같았다. 헬스처럼 과하게 땀을 흘리지도 않고, 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튜브로만 배우기에 한계를 느낀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금세 요가에 재미를 붙였다. 몸을 이리저리 굴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선생님이 보여주는 자세를 능숙하게 따라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흉내내려고 노력했다. 요가를 배울 때면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숨쉬는 법부터 시작해 몸을 움직이는 법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때문이다. 내 몸에 대해서도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자세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척추가 어떻게 생겼고, 날개뼈는 어디있고, 손과 손목사이의 미세한 근육들도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면 너무 당연하게 있는 내 몸이 신기하고 새삼스럽다. 사실은 나랑 제일 가까운 게 내 몸인데, 지금까지 몸을 제대로 쓴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몸에게 미안해진다.
처음 요가를 배우러 학원에 갔을 때 선생님은 내 허리가 이미 어느 정도 굽어있다고 했다. 등이 휘어 가슴도 오그라들고 원체 힘도 약해서 체형을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들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결국엔 힘없고 등굽은 할머니가 된다니..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래서 바뀔 수는 있나요?” “당연하지. 바뀌려고 하는 건데. ” 선생님의 사형선고를 받고 뭐라도 해야겠어서 계속 요가원에 간다. 매주 선생님의 아름다운 등근육을 보며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꾸준히 요가원에 다니다보니 몸이 바뀌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있었다) 측굴이라는 자세가 있는데, 한 쪽 다리를 옆으로 쭉 뻗고 같은 방향으로 몸을 뉘인 채 팔을 발을 향해 뻗는 자세다. 처음에는 팔이 애매하게 공중에 떠있었는데 매번 하다보니 점점 내려가 발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허리와 가슴을 필수도 있다. 선생님도 내 자세를 보며 이제 좀 변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 말이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 지금껏 열심히 해 온 내 자신에 잠시 취해있다 보면 선생님은 더 어려운 자세를 선보인다. 그럼 난 또 맥없이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지만 그 과정이 싫지 않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세를 무턱대고 따라해보면 역시나 대부분은 실패한다. 다음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해본다. 내 몸의 부위를 모두 느끼며 길을 찾는다. 그러면 무조건 전보다는 나아져 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더디지만 느낄 수 있다. 그 때의 작은 쾌감이 좋아서 계속 요가를 하고 있다.
맨 마지막 자세는 항상 ‘어깨서기’다. 팔과 어깨로만 땅을 받치고 몸통과 다리는 들어올리는 자세인데, 사실 이 자세의 핵심은 허리다. 곧은 허리로 공중에 떠있는 다리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자세로 최소 3분은 있는다. 겨우 3분이다. 그런데 나는 그 3분도 버티기 힘들다. 허리가 아파오고 팔에 힘이 풀린다. 하지만 어떻게든 견뎌보기로 한다.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올리고 가슴은 바짝 세우며 버틴다. 인고의 3분 끝에는 누워서 두다리를 아무렇게나 널부러뜨리고 휴식을 취한다. 허리가 아픈 나는 옆으로 돌아눕는다.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버텼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몸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 자세는 어떤지, 허리는 또 구부정한채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체크한다. 몸에 대해 매일매일 궁금하고 더 잘 알고 싶다. 몸뚱아리 하나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그래서 나는 요가를 좋아한다. 내 몸의 한계를 정확히 느끼면서도 내 몸은 언제나 그 이상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요가가 아니라 내 몸을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