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개인사에 관심이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뒷담화의 조짐이 보이는 대화는 반갑지 않다.
흥미진진하다가도 결국 듣는 사람 모두가 마음이 힘들어지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뒷담화, 처음엔 후련한 것 같다.
뒷담화는 시작할 때는 참 후련할 것 같은 기대를 준다.
나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은 느낌. 그 부당함을 누군가 공감해주길 바라는 기대. 그 답답함을 해소하는 그 자리를 우리는 (종종) 마련하고 싶어한다.
뒷담화를 한참 하다보면, 우리는 얘기를 들어주고 있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핀다. 상대방이 나의 말에 공감해주면, 나의 억울함이 좀 해소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과 친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유대감이 생기고, 공통분모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공감을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방이 못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약간 무리를 할때도 있다. 나에게 부당함을 선사한 그 사람의 인격, 또는 더 안좋은 사례들을 추가로 넣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저녁 대화의 목적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푸는 것인지, 아니면 김대리라는 사람의 나쁜 측면을 집중적으로 연구 및 험담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뒷담화의 실체.
뒷담화를 하면 보통 이런 경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시원하게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슬픔을 토로하기도 한 그 자리가 끝나고, 즐겁게 돌아갈때면, 웬지 마음이 착찹하고 한숨이 나온다.
뒷담화의 특징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떤 정황에 있던 결국 2개의 틀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의 억울함과, 타인의 부당함.'
뒷담화라는 대화의 틀에 항상 등장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틀 안에 있는 한, 뒷담화를 계속 해보면 아시겠지만, 불평이 점점 더 커져간다. 그리고 점점 더 심한 것이 등장하게 된다. This is not fair가 더 심화되기 마련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뒷담화의 마력 또는 그 실체라고 생각한다.뒷담화는 결국 우리를 끌어내린다.
뒷담화는 사실 줄이는 게 유익하다.
마력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아니, 어떻게 안하고 사냐고?
그런데, 계속 하다보면 알게된다. 별로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을. (정말 많이 해보면 알게 된다 ㅎㅎㅎㅎ)
뒷담화라는 프레임에서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나의 부당함과 피해의식만 강화시켜 갈 뿐이다. 도피처만 찾게 되고, 대체제만 찾게 된다. 더욱 severe하게 진행될 수록 인간의 민낯, 그 육의 민낯을 드러낼 뿐이다. 좋은 감정이 남을 리가 없다. 후련할 것이라는 기대어린 느낌뿐이고, 속임일 뿐이다. 결국 마음은 추락하고 있다.
나의 정황을 나누며 조언을 요청하는 그런 자리는 너무나도 겸손하고 좋은 자리다. 정겹게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언을 요청하려다가 종종 누군가를 뒷담화 하게 되는 것을 ㅎㅎㅎㅎ. 그래서, 뒷담화의 프레임을 깨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억울함과, 타인의 부당함" 의 틀만 깨져도 대화는 나도 모르게 뒷담화로 가진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후욕하는 것이 아니라, 조언이나 위로가 필요하다. 아까운 시간과 귀한 관계 속에서 뒷담화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참고로, 혹시 뒷담화에 불가피하게(?) 참여해야만 하는 강제적인 상황이라면, 끄덕거림이나 동의 정도로 그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Outro.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들을 피한다. 왜냐하면 그들 곁에 서면 힘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대개 그런 사람들은 '늪'과 같아서, 다 자기가 있는 진흙탕으로 넣으려 한다.
문제는 뒷담화를 많이 하다보면... 바로 내가 그런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뒷담화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은 연륜이 쌓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이 영역은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사실 나도 매일 그 유혹 앞에서 남들 몰래 결단하고 있다. 역시 쉽지는 않지만, 효능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