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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Jun 19. 2021

열나는 밤(체온계 39도)

워킹맘

아기가 돌이 지나고 곧잘 걷게 되면서 캠핑을 다니는데 완전히 재미가 들렸다. 매주 그늘막을 치고 야외로 나가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살았다. 사실 본격적인 캠핑이라기엔 시시하지만 최선을 다해 콧바람을 넣으러 다니느라 바빴다. 참으로 오랜만에 여가다운 여가생활이 신나서 피크닉 도시락을 준비하고 나들이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기는 당연히 놀이터를 좋아하니 그저 부모가 재밌게 놀아줄 생각만 했다.


유난히도 더운 5월 마지막 주 주말이었다. 여름이 벌써 도착한 어린이 놀이터에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그늘막 텐트를 쳐놓고 아기와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우리도 자리를 깔았다. 아기는 안아달라고 보챘다. 늘 그랬지만 유독 더 안아달라고 보채기만 하고 신나게 노는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서 낯설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아이보다 부모가 더 신나게 놀았다. 아기는 평소와는 달리 소극적이었다. 자식이 처음이라 몰랐다. 아기의 몸이 유난히 뜨끈했지만, 날이 더워 그러려니 했다.


아기는 좋아하던 수박도 먹는 둥 마는둥하더니 모래놀이도 조금 하고 계속 안겨있으려고만 했다. 자기가 뛰어다니며 노는 것보다 다른 아이들이 비눗방울을 크게 불고 날리는 모습만 흥미롭게 바라봤다. 속 안아달라고만 하며 붙어있는 통에 유난스럽다 싶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실컷 진이 빠지도록 놀고 해가 질때쯤이에야 자리를 정리하고 귀가했다.


그날 저녁 욕을 시키면서 만져본 아기 몸이 너무나 뜨거웠다. 시원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놀았는 데도 더웠나 싶었다. 그날 밤부터 아기의 체온이 심상치 않았다. 몸부림치는 아이를 겨우 붙잡아 체온을 측정했다. 고막체온계로 38.5도가 나왔다. 처음 보는 수치에 생각이 멈춰버렸다. 접종 열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냥 놀다가 갑자기 체온이 오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이는 열이 펄펄 나고 힘들어서 그런지 유난스럽게 보채 댔다. 칭얼대다가 힘들어서 늘어지다가 짜증을 냈다.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던 해열제 시럽을 먹여보려 했지만 시럽이 조금 입에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주룩주룩 뱉어져 나왔다. 열나는 밤의 시작이었다. 기저귀까지 홀딱 벗겨내고 물로 닦아내고 부채질을 했다. 도저히 약을 먹어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조금 먹었던 해열제의 효과가 있는지 체온이 조금 내려가서 조금 괜찮아졌다 싶었다.


아이가 아프니 자책의 시간이 이어졌다. 엄마가 무식해서 땡볕에 애를 놀게 했으니 더위를 먹어도 단단히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애가 열이 펄펄 나고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영겁의 시간이 어찌어찌 지나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기도 지쳐 잠들어 있었다. 다시 슬쩍 만져본 아기의 몸은 불덩이였다. 고막체온계로 다시 재본 채온은 40도였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을 조심스럽게 깨웠다. 새벽 2시였다.


남편이 아기 입에 해열제 시럽을 과감하게 짜 놓고 고래고래 울어재끼는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편은 새벽 4시쯤 기절해버렸고, 나만 꼬박 버텨냈다. 기저귀만 채워놓으면 열이 뽀르륵 올라버려서 애를 홀딱 벗겨놓고 안아서 달랬다. 안고 있으면 내 체온 때문에 헛수고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울며불며 엄마에게 안겨드는 아기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새벽이 되었다. 워킹맘에게 가장 가혹한 출근시간이 다가왔다. 밤에 노력으로 열이 조금 내려 38.5도로 늘어져 자고 있는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


밤새 제대로 못 자기는 남편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다만 몇 시간이라도 눈꺼풀을 붙였던 남편의 상황은 조금 나을 터였다. 정신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열나서 정말 늘어져버린 아이를 시어머니 품에 맡겨두고 출근하는데 정말 피눈물이 났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고작 몇 푼이나 벌겠다고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어 괴로웠다. 내 직장에는 아이 돌봄 휴가가 있고, 육아시간도 있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고작 비정규직인 주제에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순간 일자리는 사라져 버릴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격지심 일지도 몰랐다. 정규직은 육아시간을 매일 쓰지만, 비정규직에서는 단 한 명도 쓸 엄두를 못 냈다. 20개월 아기를 키우는 옆 부서 직원은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바로 복직했다. 본인의 의지로 그랬다고 하지만, 그 처절함을 알아주는 사람은 같은 처지 말고는 없다.


그날따라 업무는 왜 그리도 많은지 내내 엉덩이 들썩 조차 못했다. 잠을 못 잔 채로 푸석해 말라버린 얼굴빛이 마스크로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지도 모르게 겨우겨우 돌아왔다. 하루 종일 시어머니가 봐주신 아이는 밥을 유독 안 먹었다고 했다. 퇴근한 나를 보고 아기가 덥석 안겨들었다. 이상했다. 아기 몸이 뜨겁다. 아기가 열나면 해열제 먹여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출근을 했건만, 옛날 사람인 시어머니는 약 그게 뭐 좋은 거냐며 하루 종일 그저 홀딱 벗겨 놓으셨음을 알게 되었다. 고막체온계로 아기 열을 재보니 40도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열나는 아기를 받아주는 병원도 없었다. 미친 듯이 전화를 돌려 겨우겨우 진료를 봐준다는 병원을 섭외했다. 그리고 더 정신없이 운전해서 병원으로 달렸다. 아이를 기저귀까지 벗겨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수건으로 둘둘 말고 방수포로 덧대 안고 내달렸다. 나는 운전을 시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아이를 안았다.


겨우겨우 도착한 소아과에서 모든 환자의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마지막 순서로 진료를 받게 되었다. 발열자 관찰실로 이동하여 천천히 시간을 들여 기다리는 동안 신기한 게 많은지 아기는 열이 펄펄 나면서도 병원을 탐색했다. 체온이 40도라는 것만 빼놓고는 참 평온했다. 간호사가 아기를 홀딱 벗긴 채로 젖은 수건에 돌 돌감아 데리고 온 나에게 21세기에 누가 이렇게 원시적으로 애를 보냐며 핀잔을 줬다. 같이 온 할머니를 보고 일부러 들으라고 말해줬나 싶었다.


엄마. 21세기에 이렇게 원시적으로 애를 보면 어떡해요? 해열제를 먹여가며 관리를 해야지 옛날 방식대로 하는 게 좋은 게 아니에요.


드디어 만난 의사 선생님은 다른 병변은 없고 목이 좀 붓고 맑은 콧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돌발진이라고 진단했다. 일반적으로 돌 즈음에 걸린다고 돌발진이라고 알려졌지만 [돌발] 성 피부 발[진]이라는 뜻의 돌발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2-3일 정도 고열이 나다가 피부에 열꽃이 피면서 열 내리고 회복될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39도 이상의 고열이 계속 지속되면 고열로 인한 열성경련이 올 수도 있으니 열이 오르지 않게 해열제를 꼭 먹여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진단명이 나오니 안심이 되었다. 무슨 병인지 모를 때는 너무나 걱정되고 심란하지만, 치료방법이 있고 경과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깨달았다. 진료를 마치고  약까지 조제한 후 주차장으로 나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악을 쓰며 울던 아기도 진정했는데, 정작 내가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맥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운전을 해서 병원을 왔는지 아득했다. 도저히 내가 운전해서 돌아갈 엄두가 안 나서 퇴근 중인 남편에게 곧장 주자창으로 와달라고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거렸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이고 밤새 지켜보는 일이 계속되었다. 아기의 열은 40도에서 39.5, 39, 38.9도로 안정적으로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에는 38.5도였는데 별일 없이 잘 노는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며칠 후 열꽃이 확 피었다가 깨끗하게 사라진다고 경험을 말해 주었다. 덧붙여 아기들은 아프고 나면 정신적으로도 부쩍 성장한다고 알려주었다.


15개월 만에 처음 맞이한 질병은 아이도 나도 조금 더 단단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아기는 두 밤 더 자고 완전히 회복했다. 귀에 고막체온계를 넣고 체온을 잴 때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한 번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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