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도 병이다
직장생활이 책상에 매여 몇 시간이고 앉아있어야 하는 한국식 공부보다 나은 건 사실이다. 소속은 마케팅 팀이지만, 실제 내 분야는 독립되어 있는 데다 상부 보고도 두 곳에 하고, technician의 역할까지 해야 하다 보니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한다. 절반은 보고하고, 절반은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좋다. 신기술을 다루는 분야라 즐겁기도 하고.
요 몇 달간 신나게 일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본 지인들은 허탈한 웃음을 짓곤 했다. "공시 공부할 때는 죽을 상으로 우울한 글만 잔뜩 찍어내더니 요즘은 잠잠하네." 그 말에는 지금이 현저히 행복해서 글을 덜 쓰는 게 아니겠냐는 뉘앙스가 묻어있었다. 틀린 말일까 싶어 함부로 받아치진 않았다. 되려, 글에서 내가 처했던 상황에 대한 불평만 했었나 싶어 생각에 잠겼다. 브런치에 글을 게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공시가 맞다. 하지만 오랫동안 성격 고민을 했었고, 상담치료는 오랫동안 받았으며 다양한 시도를 했단 흔적이 글 안에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단지 2년도 채 안 되는 공시가 사람을 우울증으로 몰아넣었고, 그게 끝나니 태세전환을 했다가 내 서사의 전부로 비치는 걸까.
우울증 환자라고 해서, 하루종일 죽상으로 돌아다니며 앓는 소리를 하진 않는다. 신나는 일도 있고 집중할 때도 있다. 그런 병 따위 나와는 관련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고. 겉으로 보면 평범하게 남들처럼 잘만 헤엄치고 있다. 다만 그 평범함을 연출하는데 두세 배의 힘이 들어가는 게 우울증의 진면모라 보는 견해다.
변화무쌍한 직장에서 시간 맞춰 약을 먹는 것도, 미어터지는 토요일 두 시간씩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는 것도, 수면 때문에 오전 내내 꾸벅꾸벅 조는데 상사에게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도 참 어렵다. 업무용 챗에 24/7 대기하는 것이, 혹은 휴일에 툭하면 오피스에 나오는 것이 단순히 잘 보이겠다는 욕심이나 아부성이 아니라 시간의 빈 공간을 견디기가 힘들어 취하는 조치라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SNS를 파는 곳에 다니면서 근처에 가지도 않는 행동이 괴짜 같다고 놀리는 것도 그러려니 한다.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주변엔 이런 날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뭐, 지인들조차 내 우울증이 어린아이의 일시적인 생떼였던 것처럼 농담하는데 무슨 희망을 갖겠어.
정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겠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우울하다. 그 원인이 내면에 있다는 사실 정도야 안다. 약도 먹고 있고, 운동도 하고 있다. 책도 읽으려 하고, 일에 집중해보려고도 한다. 무엇보다 남자가 동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버티면 언젠가 나아지겠지'라 적힌 나뭇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꺼져가는 모닥불을 뒤적거리는 모양새다. 거기에 찬물을 붓는 건 주변인들에 대한 실망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이가 들수록 실망감을 감쪽같이 숨긴다는 점이다.
<월플라워>에서 '사람은 자신이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정도의 사랑만 받아들인다.'라고 했다. 타인을 향한 실망은 결국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그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근본적으로 스스로를 대하는 취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과 하는 건 많지만 손가락 튕기듯 나을 수가 없어서 병인 거다. 병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관심이 아닌 잔소리를 듣고 싶어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더더욱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긴, 이 대사를 반복하기도 이제는 지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