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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ul 02. 2024

고통을 마주하기.

이겨내고 솔직해지기. | 이레네의 혼자서 음반 내는 법 3화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건 힘들다.

당신은 마주하기 힘든 과거가 있는가? 회피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이런 질문을 듣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을 꺼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창작하는 것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그렇기에 자신이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과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트라우마를 회피했다. 그리고 도망만 다니니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를 마주해야 했다.


잔인한 이야기일 수 있다. '왜 나 자신이 일부러 고통받아야 하지?' 그런 뒤 자기만의 세계로 갇혀간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영혼도심을 시작하기 전까지, 도피성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곡을 깔짝하고 올리는 정도의 작업물만 올렸다. 아티스트 이름은 마음에 안 들면 바꾸고, 업로드된 건 언제든지 삭제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나 현실을 직면하지 않았기에, 나를 직시하지 않았기에 나아갈 수 없었다. 영혼도심은 실물 음반을 발매한 것처럼 절대 인터넷에서 내 음악을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조금 퀄리티가 떨어지고, 나중에 불만족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점점 더 용기가 생겨갔다. 점점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발매한 <하늘섬>의 'the spiral' 트랙은 그렇게 태어났다. 우울해서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 절망만 존재한다고 느껴지던 좌절감의 악순환을 과거에 느낀 그대로 묘사했다. 나는 이 트랙을 작업할 때 정말 작업하기 싫어서 끝까지 미루곤 했다. 나를 직면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발매 후 주변의 피드백을 들어보면 이 트랙이 정말 마음이 가고 좋았다는 것이다. 이때 깨달았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혹은 극복한 가사는 같은 고통을 겪었던 사람에게 공감과 치유를 주는구나.


세상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도저히 가사로 쓸 수 없는 고통이라고 느낀다면, 괜찮다. 아직 시간이 덜 지나간 것이다. 너무 고통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삶에는 희노애락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는 오히려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괴롭고 힘들겠지만, 오히려 긴 시간을 두고 봤을 때 그것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길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음악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그러므로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적어내는 것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만 묶여서 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훌훌 털어내는 것을 추천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겪고, 그러므로 트라우마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런 노래가 '닿는다'.



창작은 고통스럽다.

창작의 고통은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할 때 비로소 와닿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창작물을 존중한다. 또한 내가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작업물을 보면 존경심이 들고,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여기서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려고 한다. 창작은 고통스럽다.


내가 이 시리즈에서 지향하는 바는 이렇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학문이라도 실제로는 단순한 몇 가지에서 파생되는 것이 많다. 내 생각에 음반을 만드는 법도 그렇다. 핵심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 몇 가지가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음반을 내는 것은 어렵다. 이게 쉽다면 누구나 좋은 앨범을 들고 있는 아티스트일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힙합의 keep it real이 생각나긴 하지만, 나는 모든 음악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듣기엔 좋겠지.' 혹은 '이게 대중적인 거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인다. 유행하는 것을 만드는 것도 피해야 한다. 거기에는 흐름을 타서 뭔가 잘 되어보려 한다는 속내가 들어있다. 정작 만들고 나면 그 유행은 끝나있다.


이건 정말정말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외부적인 것에 신경 쓰면서 작업하게 된다. 이걸 듣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 취향이 마이너한데 더 '일반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돈이 될까? ...이런 걸 신경 안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느낀 교훈은 이렇다. 자신의 가치관, 호불호와 취향을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되어야 진정으로 오리지널한 음반이 나온다.


청자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세계가 없다면 애초에 무언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밀고 나가야 자신만의 색이 드러나게 된다. 적어도 하나의 앨범을 작업하는 동안에는 절대 세상에 휘둘리지 마라.


물론 타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신만 이해하는 가사를 쓰거나, 내 음악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아집을 부리거나 별로 안 중요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만드는 사람만 엄청 신경 쓰는 게 있고, 듣는 사람은 잘 모르는 디테일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아는 것보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쉽고 명쾌해진다.


이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음반을 내는 것을 어떻게 현실화하는가'를 알아도 그냥 스스로 기념하는 음반 정도가 나오거나 다른 이들의 가슴에 닿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실제로 해본 경험들이라서 그렇다. 당신이 음반을 내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져라.


조금 강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결국 나 자신한테 하는 얘기다. 현재 나는 많은 앨범을 머릿속에서 구상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지만, 실제로 구현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그 이유는 내가 잘 휘둘리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트 초안은 금방 나오지만, 실제로 발매하는 것과의 간극은 매우 크다. 완성했을 때의 평가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도심으로 발매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무조건 작업한 건 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매한 것을 쭉 묶어서 훑어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하나의 앨범마다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그것이 전부 합쳐진 게 나의 포트폴리오다.


내가 음반을 만드는 것을 계속하는 이유는 듣는 이를 치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힙합에 이끌린 것도 누군가의 솔직함에 울었던 기억 때문이니까. 이 과정으로 정신은 몰입하게 되고 자신과 타인을 더 잘 알 수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내가 만들 때 느끼는 고통이 반대로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치유해 준다고 생각하면, 인내하며 해나갈 수 있는 보람 있는 일 아닐까. 나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하고 있다.


화이팅.


다음 글에서는 앨범의 발매 과정을 간단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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