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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리 Mar 04. 2021

#6. 시간 팝니다. 가격은 세전 월 140만원이에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 나 지금 시간 팔아 돈 벌고 있구나’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은 하고 있지 않을 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하겠지만,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돈 벌겠다고 직장에 나와 앉아있는데 머리가 멍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루쯤은 일을 미치도록 미루고 싶어 근무시간 내내 멍 때리고 있는 그런 날.   

  

2016년 말 겨울엔 유독 그런 날이 많았다. 눈물로 언 바다를 녹이던 1,2월이 가고 지옥과도 같던 프로그램이 폐지되며 나의 거처는 자연스레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옮겨졌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막내를 위한 제작사의 배려였다.     


첫 프로그램 폐지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얼렁뚱땅 면접을 보고 바로 다음 주부터 얼렁뚱땅 출근을 하게 되었다. 소속은 외주 제작사였지만 운 좋게 본사 근무를 하게 되었고 매일 방송국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꽤나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 기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금세 그 생활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출근만 있고 퇴근은 없는 생활을 할 때, 나는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믿지도 않는 신께 애원했다. 매일 새로운 아이템을 쥐어짜고,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 할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똑같은 것만 했으면 좋겠다, 중얼거리며 잠들었다.   

  

내가 옮겨간 프로그램은 딱 내가 원하던 유형의 프로그램이었다. 9시 반 출근, 6시 반 퇴근을 칼같이 지킬 수 있었고 아이템 고민 없이 섭외만 하면 될 일이었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옮기며 월급이 50만 원정도 인상되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영위할 수 있었다.     


한 두어 달 간은.     


내가 모든 것에 이리 빨리 질려버리는 인간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옮긴 프로그램은 격주로 방송을 쳐내던 전 프로그램과는 달리 매주 아이템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격주 프로그램보다 섭외는 수월했다. 한 일주일 바짝 한 4~50군데 섭외 전화를 돌리고 나면 그중 너댓군데는 걸려 올라왔다. 촬영 협조 의사를 밝힌 섭외처 한 곳 당 하루씩 투자하여 1시 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취재, 3시간 가량의 정리를 마치면 약 2주 만에 한 달치 아이템이 확보되는 셈이었다. 한 달을 알차게 쓰면 촬영 편집 중인 아이템까지 모두 합쳐 향후 3달간은 걱정 없이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계산을 끝낸 후 나는 생각했다.     


‘그럼 2주는 무위도식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때부터 나는 내 노동력이 아닌 시간을 팔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출근해 자리에 앉아 멍 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 너무 졸릴 땐 큰일 보는 척 하고 화장실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10여분 가량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맛집으로 소문난 구내식당에서 한 끼 때우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까지 하고 나면 어느덧 1시. 아이템 찾는 척 뉴스 몇 건 뒤적이다 블로그에 배설물 같은 글 몇 줄을 싸지르고 우울감에 한껏 젖어 친구들에게 하소연 하다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다.     


한 서너 달을 이렇게 보내보니 이마저도 지겨워졌다. 그 다음부턴 거꾸로 도는 런닝머신을 달리듯 가지 않는 시간을 1분 1초 세어내리며 동그라미에 줄을 그었다. 하루에 동그라미 9개. 1시간에 하나씩.     


몸이 편안해져갈수록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점점 멍청해지는 기분이었다. 글다운 글은커녕 맥락 없는 넋두리만 늘어놓다보니 단어를 잃어갔다. 생각이란 걸 하지 않다보니 사고하는 법을 잊어갔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꽤나 총망 받던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정작 작가가 되고 나니 바보가 되었다. 글쟁이가 되라던 고2 문학 선생님께 죄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난 늘 어딘가에 붕 떠 부유하고 있었다.     


꽃다운 스물셋이 그리 흘러갔다.     


2016년 12월쯤 나는 결심했다.    

 

이곳을 벗어나기로.     


2017년 1월. 나는 함께 일한 피디, 작가, 심지어 방송국 부장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뛰쳐나왔다. 스물넷마저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낼 순 없었다.     


퇴사 후, 잠시 잠깐의 휴식 기간 동안 원론적인 고민에 잠겨들었다. 

    

방송 일을 계속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일생일대의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키워오던 작가의 꿈이었다. 물론 이런 형태는 아니었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놓기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교양, 다큐 해봤으니 예능을 한번 해보자!     


그때부터 나는 예능 프로그램만 골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겨우겨우 면접을 본 한 곳은 긍정적인 시그널만 잔뜩 던져주고 당장 내일이라도 연락을 줄 것처럼 하더니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약 한 달간의 삽질 후 아, 안 되려나보다, 포기하려던 차 운명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사랑해마지않던 e스포츠 리그. 메인작가 한명, 서브작가 한명, 막내작가 한명. 딱 세 명의 작가로 꾸려지는 그 프로그램에서 막내작가 구인공고가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것마저 안 되면 방송 일을 그만두겠노라, 마음 속 마침표를 찍어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내 자리를 얻어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걷는데 시간을 팔았던 그 1년이 도움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1년차 경력을 얻어내긴 했으니 어느 정도는 기여를 했겠지. 하지만 그것 역시 시간을 팔아 얻어낸 것이 아닌가?     


5년이 지난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가끔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묘하게 우중충하고 묘하게 허망한 이 기분이 생소하지 않다는 것. 이토록 나를 괴롭게 하는 무력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깊다. 허나, 나와 같은 생각과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너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당신과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당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 이 기나긴 인생에 며칠, 몇 주, 몇 달 정도 쉬어가면 어떤가. 그 시간 내어주고 돈이라도 벌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너무 염려 말았으면 한다. 길은 어디에든 있다. 오리무중 속에서도 손만 뻗어 한번 휘저으면 내가 열 수 있는 문이 수십, 수천 개는 있다.     


이것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같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 서로가 서로의 끈이 되어 너무 깊이 매몰되지 않도록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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