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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2. 2024

책 : 우치다 다쓰루

2024. 5. 22.

우치다 다쓰루 사상은 일신교(예컨대 유대교)를 기반으로 하는 서양 철학의 전통과 다신교를 기반한 일본(동양) 문화의 전통이 결합되어 탄생한 새로운 형태이 '아말감 철학'이다.

우치다 다쓰루 사상은 문학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나아가 예술이든 '하이브리드'라는 형태를 취할 때 가장 풍부하고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절묘하게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바꾸면 '토착'과 '외래'의 것이 만나 서로 녹아 들어가서 '화학반응'을 일으킨 후에야 비로소 '고유한 무엇인가'가 만들어진다는 발상이다. '토착'의 것은 '단품'으로는 깊이가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외래'의 것은 '단품'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힘이 없다.

그런데 '토착'과 '외래'가 만나면 '고유하면서 외부에 열리고 동시에 전통적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독특한 사상이 출현한다. 우치다 다쓰루 사상은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 (서문 7~8쪽)




우치다 다쓰루, 내가 존경하는 일본의 철학자이자 무도가이다. 나는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을 거의 사서 볼 정도로 마니아다. 어찌 보면 우치다 선생을 철학적(인문학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다쓰루안이라 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가 다쓰루의 신간을 검색해 보니, 내가 가파도에 내려온 사이에 5권이나 번역 출간되었다. 닥치고 주문. 어제야 모두 배송되었다. 책박스를 뜯자마자 박동섭이 쓴 <우치다 다쓰루>를 읽었다. 148쪽의 소책자인데, 우치다의 사상을 10개의 항목으로 나눠 박동섭식으로 정리하였다. 글이 간결하여 깊이를 가늠하기는 뭐하지만, 우치다 사상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이 책은 항목별로 내가 밑줄 친 부분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글을 남긴다. (앞으로 계속 읽어가겠다.)

우치다 선생을 소개한 개론서, 우시다의 신서, 우치다가 공저한 책, 그리고 우치다의 레비나스 3부작 중에서 나머지 2권.

서문 : ‘하이브리드’로 탄생한 사상


"신체에 깃드는 실감은 아무리 논리를 구해도 결코 다 길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길어 낼 수 없는 실감을 목표로 하는 논리가 소중하다. 언어가 신체를 좇고 논리가 윤리를 목표로 하고 이론이 실감에 육박하려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거기에 '저주'가 서식할 여지는 없다. "나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언제나 깊게 자각한 상태에서 그림에도 자신의 '말'로 다 길어 낼 수 없는 것을 '말'로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축복'의 본령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 다쓰루는 논리에 경도된 시대에 등장한 '윤리의 사람'이고 '저주의 시대'에 나타난 '축복의 사람'이다. (9)


01 마치바론


'마치바'라는 개념은 우치다 다쓰루의 신체를 기반으로 한 고유한 생활 감각과 미의식, 연구 자세, 그리고 정서를 품고 있어서 애당초 어떤 특정한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어렵다. 더불어 '마치바'는 개념 이전에 일종의 실감이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체득'되어야 하는 그 어떤 것이다. (1)


사고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다른 사고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인데 그 일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나'의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 않는다. 아니, 사고가 진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코 나의 것으로 할 수 없는 채로 계속 대치화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나에게 우치다 다쓰루의 '마치바'라는 개념은 그런 것이다. (11)


02 학술론


학술의 본질은 '증여'에 대한 '반대급부의무'의 실천에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선물'을 주었기 때문에 그 '선물'을 나만 갖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패스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의무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학술의 중요성과 의의를 선물로서 내어 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우치다 다쓰루 학술론의 핵심이다. (13)


오해가 있을 것 같아 급히 첨언하자면 우치다 다쓰루의 학술적 글쓰기에서 '쉬움'은 표적이 아닌 듯하다. '쉬움'은 글 쓰는 이에게 중요한 미덕이긴 하지만, 쉬움은 결코 무거움과 가벼움을 함께 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일종의 부산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19)


03 하이브리드론


우치다 다쓰루에게는 우리가 통념상 사용하는 OO연구자라고 명명할 이름이 없다. 이런 그의 특정한 영역과 경계를 넘어서 왕복 운동하는 연구 자세는 '그 어떤 자도 되지 않겠다'는 결의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어떤 자도 되지 않겠다'는 자세는 역설적으로 우치다 다쓰루를 그 어떤 학문 영역에 대해서도 뭔가 말할 수 있는 '존재'로 이끈다. (25)


권력에 저항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익이라든지 이해관계, 혹은 협량한 전문적 시점에 묶이지 않고 '우려'와 '애착'에 의해 동기 지워진 활동으로 정의된다. 지성인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고 사이드는 우리의 상식을 전복시키는 주장을 한다. (26)


04 문체론


우치다 다쓰루의 문체에서는 농담은 진지함과 겨루며 가벼움은 무거움과 다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무거움은 가벼움에 긴장을 주고 가벼움은 무거움에 탄력을 주어 서로가 아름다운 견제의 균형미를 이루어내고 있다. 우치다 다쓰루의 문체는 글쓴이 자신 안에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일종의 '회로' 같은 것이다. 신체 안에 파고들어 자신을 납득시키는 말은 독자들에게 축복의 말이 된다. (37)


우치다 다쓰루는 이 선현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종의 '펜레터' 양식으로 레비나스 철학을 논하고 '신봉자'의 어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을 기술하고 있다. '펜레터의 언어', '제자의 언어' 그리고 '신봉자의 언어'로 학술을 논하는 것은 충분히 있어도 되는 일이다. 아니, 무거움과 난해함으로 경직된 학술 세계에 청량한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이런 신선한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치다 다쓰루는 팬과 신봉자, 그리고 제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함으로써 '철학언어'와 '일상언어'를 가로지르는 하이브리드 언어를 창조한 것이다. (47)


05 일리론


우치다 다쓰루의 일리론(一理論)은 학술이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지적 절도'의 정신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절제 속에서 상수와 변수, 절대와 상대, 추종과 오해, 그리고 진리와 무리의 양극을 한 가슴에 품는 넉넉한 성숙의 지평을 드러낸다. 더불어 그의 일리론의 핵심은 앎에 대한 탐닉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앎과 삶의 통풍에 유의하여 양자를 함께 품을 수 있는 인간적 성숙이 있다. (49)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모성애는 환상이다'는 언명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의 '바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다양한 환상(모성애 환상, 성공 환상, 연애 환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늘 그 환상들 중 하나의 환상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일리론은 이런 지적 절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59)


06 사제론


사제 관계란 어떤 정량 가능한 지식과 기술을 전승하는 관계가 아니라 '타자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학습하는 경험이다. 자신의 지적능력을 아무리 양적으로 확대해 봐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타자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타자와 나 사이에는 다른 누구로도 대체불가능한 고유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사고를 학습하는 것이 스승을 갖는 것의 교육적 효과다. (61)


'선생' 혹은 '스승'이 인류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제도라도 해서 누구한테나 좋은 '좋은' 혹은 '스승'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다 다쓰루의 '선생'에 대한 성숙한 자세다. (69)


'스승'은 제자가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존경함에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사후적 효과' 같은 것이다. (74)


07 종교론


우치다 다쓰루의 종교론은 일상성의 조건, 나아가 삶과 인간됨의 조건으로서의 종교성을 뜻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성을 기초 짓는 '신'과 '죽은 자'에 대하는 태도는 양자를 어떤 실체(명사)로 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를 상정해야만 인간은 지적,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언어, 가치관, 도량형 등이 도무지 닿은 수 없는 '초월적 존재'를 상정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지적,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 우치다 다쓰루가 말하는 종교론의 핵심이다. (73)


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라면, 신의 도움 없이 이 지상에 정의롭고 자애로운 세계를 일으켜 세울 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세계를 인간적인 곳으로 바꿀 수 있는 높은 지성과 덕성을 갖춘 인간을 신은 창조했을 게 분명하다. '유일신에게 이르는 여정에는 신 없는 역참(驛站)이 있다.' (76)


08 무도론


우치다 다쓰루의 무도론(武道論)은 오랜 합기도 수련과 합기도 지도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무도의 극의(極意)는 애당초 배우려고 생각했던 이상의 것을 배우고, 배우려고 생각했던 이외의 것을 배우고 마는 그 역동성에 있다. 그 배움의 본질은 '사는 힘과 지혜'를 기르는 것에 있다. 그는 오랜 합기도 수련을 통해서 깨달은 이치를 무도 이외의 다양한 분야와 연결 지어서 일반 대중에게 설파하고 있다. (85)


'합기도'에 관해서 자주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서 던지는 것이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종류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상대방의 힘을 내가 이용한다'는 문형은 틀렸다. 이때 힘을 이용하는 것은 나도 아니고 상대방도 아니다. 나와 상대가 서로 닿음으로써 그 장에서 성립한 '나와 상대방을 함께 포함하는 복소적(複素的) 신체'다. (88)


무도 수행을 통해 단련된 그의 몸은 '인식중심주의', 즉 '앎에의 탐닉'에 제동을 걸고 경계한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무슨 공부이든 공부에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우치다 다쓰루는 단답식의 인식이나, 내 몸과 삶이 따라가지 못하는 '커다란 깨침'을 오히려 경계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신체와 무도가로서의 '약함'의 자각은 앎과 삶, 그리고 명분과 실질이 서로 맞물린 경계 지역에서 얻어지는 성숙의 자세로 연결된다. (94)


09 교육론


우치다 다쓰루가 생각하는 교육은 '집단의 존속을 위해 공공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배려할 수 있는 일정 수의 공민을 키우는 일'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상적인 한 가지 교육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담백한 체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치다 다쓰루의 교육론은 교육을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이고 교육은 교사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니라 '교사단'이라는 집단이 맡는 과업이라는 새로운 상식 구축에 있다. (97)


교육이라는 활동은 '결국'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 인간의 '결의'이고, 그 사람에 관해서 설령 뭔가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미지수 x'를 'x'로 남겨두고 결코 거기에 '정수 a'를 마지막까지 대입하지 않는 이른바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결의 혹은 결기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교육 실천은 망설임의 실천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교육을 논하는 데 있어 이 '망설임의 실천'과 관련해 우치다 다쓰루를 사사했다. (106)


10 어른론


우치다 다쓰루는 '어른'을 정의할 때 이러저러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어른'이라고 섣불리 정의하는 것을 자제한다. 그 대신에 '어른'이라 '아이들로부터 어른으로 생각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어른'은 '아이'와의 관계 속에 있는 일종의 '수위차'로서만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그러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을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가는 '가산(加算) 메타포'가 아니라 '도야(陶冶) 메타포'로 설명할 것을 주장한다. (109)


'도야(陶冶)'라는 것은 도기를 굽고 주물을 만드는 일인데, 이 '동사'가 성숙의 메타포로 이용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프로세스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 하나는 원래 물질이 다른 물질로 바뀐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혼입한 것의 화학적 간섭으로 예상외에 색채와 문양을 띤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성숙의 정의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117)


어른은 자신이 누군가의 덕분으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의존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조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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