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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3. 2024

책 :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2024.5.23.

도장(道場)이라는 말은 원래 종교 용어입니다. 수행을 하는 곳이죠. 무도 수업의 목적은 근골을 강하게 하거나 움직임을 기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양도체(良導體)'로 만드는 것입니다. 양도체란 경직되고 막히고 느슨한 곳 없이 갖추어진 몸을 뜻합니다. 그 신체를 통해서 거대한 자연의 힘 에너지가 발동합니다. 신체는 '힘의 심연'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목입니다. 아집을 지우고 투명한 심신을 만드는 일, 그것이 무도 수업입니다. 그 점에서는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43)


지적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앎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내 앎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관한 '유한성의 자각'이 지적 상태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이렇게 '무한한 앎을 향해 열린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고요. 저는 도서관에게서 제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거죠. (65)



이번에 나온 우치다 선생의 신간은 일본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번역자이자 우치다 다쓰루의 신봉자인 박동섭과 우치다 다쓰루의 직접 연결을 통해 수집, 편집, 제작된 책이다. 제목은 참으로 도발적이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이런 식으로 제목을 정하는 것은 우치다 선생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미 관습화된 사유에서 벗어나 그 이면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제목을 정해, 주제를 환기시킨 다음 우치다 다쓰루의 특유의 유머로 실감 나게 주제에 육박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의 특징이다.


'스승은 없다'라는 주장에 맞서 '스승이 있다'고 말한 후, 그런데 그 스승은 스승에게서 오는 힘이 아니라 스승을 스승이라 부르고 따르는 제자의 태도에서 사후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라는 주장에 도달하기까지 우치다식 글쓰기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도서관에는 사람이 많이 와야 한다'라든지, '도서관에는 신간 중심에 대출이 많은 책을 전시해야 한다'는 상업적, 경제적, 관료적 사유를 비틀어,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왜 그런 주장을 펼치는지는 직접 확인하면서 짜릿함을 맛보기 바란다.)


책은 크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서관에 관하여, 책에 관하여, 출판에 관하여. 1장을 읽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역시 '우치다가 우치다했다.' 사서를 현실 세계와 초월세계 사이를 지키는 문지기(Gatekeeper)에 비유한다든지, 룰이 없는 신비한 세계의 마녀에 비유할 때, 나는 박수를 쳤다. 게다가 도서관을 다시 차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2장을 읽으며 나는 책과 책장이야기를 하는데, 책장에 대한 신선한 접근에 심쿵했다. 책장은 내가 읽은 책을 모은 것이 아니라, 나의 이상적 자아가 담겨 있다는 말, 읽지 않는 책에 둘러싸여 여생을 보내는 즐거움, 학력 위조가 아니라 독서능력위조가 가능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장소라고 말할 때 박장대소했다. 참으로 유쾌하도다!

마지막 3장에서 출판과 저작권에 대한 우치다의 견해에 참으로 신선했다. 독자를 소비자로 여기는 현 출판시장에서 독자는 소비자가 아니며, 책은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때 가슴이 뭉클했다. 출판 행위는 독자를 이끄는 전도활동이라고 감히 낡은 말을 을 때, 독립출판사라도 차려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추신>

우치다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오래된 벗을 만나듯 반갑다. 며칠 동안은 우치다와 만남이 지속될 듯 하다. 다음에 읽을 책은 <한걸음 뒤의 세상 : '후퇴'에서 찾는 생존법>이다. 우치다 다쓰루 외 여러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무슨 영감을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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