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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8. 2024

책 :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2024. 5. 28.

제아무리 훌륭한 삶이라도 나름의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완벽주의는 불협화음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우리는 훗날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깨닫는다. 내가 평범한 것들에, 눈에 띄지 않는 것들에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졌더라면 또 다른 길을 걷게 되지는 않았을까?

이 책이 평범하여 찬란한 것, 작고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특별한 안내소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 안내소로 가는 첫걸음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일 것이다. 평범하다거나 그저 그렇다는 꼬리표는 한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 우리가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은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주변인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 자신 때문이다.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지 않는가. (7~8쪽)



1.

평범은 중용이 아니다. 아리스텔레스나 공자가 말하는 '중용'은 누구나 도달할 수 없는 성인의 높은 경지다. 저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을 평범의 모델로 삼지는 않는다. 차라리 자신의 삶을 극단으로 치닫게 했던 탁월성과 능력주의, 천재성과 최고주의의 백신으로, 아니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전혀 포착하지 못하는 평범함의 비범함을 이야기한다.

이 비범함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사소함 속에 감춰진 디테일한 차이를 포착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을 능력과 무능력, 탁월과 천박, 성공과 실패로만 재단하는 사람은 한 편으로는 타자의 차이를 포착해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한다.


평범은 평균이 아니라 개별(타자)의 보이지 않는, 차라리 감추어진 비범함에 다른 말이다. 이 평범을 마주칠 때, 마주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은 이 세상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 평범함의 굳건한 토대가 바탕이 되어야 눈에 띄는 탁월도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책은 저자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었던 문학(철학) 작품들의 토론내용, 저자가 살면서 빠져들었던 탁월함 경도에서 벗어나 어떻게 평범함을 삶의 가치와 태도로 받아들였는지 천천히 차근차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정수를 표현한 대목이라고 내가 뽑은 내용은 주로 250쪽에서 252 쪽 걸쳐 나오는데 길더라도 인용해 보겠다. 거의 결론 부분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취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보다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비범함이다. 타인의 평가에 얽매인 채 끝없이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마음이 불러일으키는 지독한 불행이다."(250쪽)


"통제와 제약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설계할 수 없다. 또 다른 스피노자 연구자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변화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이 표출될 수 있도록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해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를 형성하고 파괴하는 속박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천부적으로 주어진 우리의 재능에 관심을 쏟는다면, '하찮은' 평범함이란 있을 수 없다. (250~251쪽)


"스피노자는 삶이 그대로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경직된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더 나은 본질을 향해, 그리고 자신만의 기쁨을 느끼며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우리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을 강조한다.

우리가 맺는 관계를 벗어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우리는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관습, 연대 역시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변화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성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상처를 주거나 용기를 주는 것들, 말하자면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들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한다. 우리의 개성 또한 우리의 상상력으로 실행되는 이미지의 수집과 조합의 산물이다. 이런 상상력은 실제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열망으로 변하는 이미지와 감각에 연관되어 있다. 평범하다는 것을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무시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데려갈 때, 우리의 타고난 본성은 우리의 세계를 확장한다. 그 세계는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텅 빈 곳이 아니라 이미 채워져 있는 무언가가 더 크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능력, 말하자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육을 단련하도록 북돋아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251~252쪽)


3.

그밖에 책을 읽다가 밑줄 친 부분도 옮겨 놓는다. 책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주로 저자가 인용한 인용구들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는 그런 일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략)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의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략) 언제나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155~6쪽)

- 니체


"그토록 엄청나고 대단한 그 일과 상관없이, 매일의 삶에는 사람들의 친절이 존재한다. 길가에서 중노동을 하는 죄인에게 빵 한 조각을 나눠 주는 노파의 친절, 부상을 입은 적에게 수통을 건네는 병사의 친절, 노인을 측은히 여기는 젊은이의 친절, 유대인 영감을 헛간에 숨겨주는 농부의 친절이다. 또한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수감자들의 편지를 그 아내와 어머니에게 전달해 주는 교도관들의 친절이다. 특정한 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닌 이런 친절은 이념과 관계없는 소박하고 소소한, 의도가 없는 친절이다. 종교적 또는 사회적 가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친절이다."(209쪽)

 - 바실 그로스만, <삶과 운명> 중에서


"사람이 먼저다. 선해지자. 그가 누구이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자. 그가 주교인지, 농민인지, 백만장자 업가인지, 사할린의 강제 노역자인지, 식당의 종업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연민을 갖자.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도 우리에게 소용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러시아 국민의 민주주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이리라."(210~11쪽)

- 안톤 체호프, <지루한 이야기> 중에서


"지나치게 보잘것없는 사람도, 지나치게 추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221쪽)

- 뷔히너, <렌츠> 중에서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기꺼이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우애의 관계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타인을 사랑하는 데 있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다." (233쪽)

- 조지 오웰


"당신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은 신체 혹은 영혼이 이러저러한 만남, 배치, 결합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서 알지 못한다."(260쪽)

- 들뢰즈, <스피노자> 중에서


4.

평범함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상보다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잔잔한 감동으로 그대에게 다가갈 것이다. 가파도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또 하나. 이 책을 읽다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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