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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Jun 18. 2024

책 :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2024. 6. 9.

자신만의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사람들로부터 과대평가받는 상황과도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사람들 앞에 내 모든 능력을 드러내놓기 바쁘게 내 비상 수단은 아무것도 남지 못하니까. 강해 보이려고, 능력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똑똑해 보이려고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기 마련이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그저 단단한 땅 위에서 당신이 가진 보폭과 당신의 속도대로 걸어가기를 바란다. 당신이 가진 에너지를 비축해 두면서, 당신의 무기를 갈고닦기를 응원한다. (169쪽)



가파도에서 노자를 연재하고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의도적이지 않았는데도 노자의 메시지가 현대화된 듯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예를 들면 노자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하는데, 사랑, 겸손(절제), 앞으로 나서지 않기이다. 그중에서 세 번째 보물이 '앞으로 나서지 않기'인데, 그와 관련되어 나는 이미 2권의 책을 소개하였다. (<가파도 일기 5월호> 16화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과 23화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등이다.)



이번에 읽는 책은 두 번째 보물인 '겸손(절제)'과 관련되어 있다. 노자가 오늘날 현대인으로 태어나 겸손과 관련된 책을 쓰면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은 책은 바로 마티아스 뇔케(Matthias Nöllke)가 쓴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조용히 이기는 사람들>의 개정판)이다. 번역본의 제목은 장황하지만, 원제는 <겸손(Understatement)>이다. (이전 판에서는 '절제'로, 개정판에서는 '겸손'으로 번역되었다.)

저자인 마티아스 뇔케를 나는 처음 접했지만, 국내에 많은 번역서를 가지고 있는 유명한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였다. 주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통찰력 있는 책을 썼다. 국내 번역된 책으로는 <낙관론자들이 빠지는 무모한 실수 12가지>, <결정적 순간, 나를 살리는 한마디 말>, <주도권을 결정하는 한마디 말>, <권력의 언어> 등이 있다는 데, 나는 이러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류의 책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처음에 인용한 구절이 아마도 번역본 제목에 가장 어울릴 법한 내용이라 옮겨 두었다. 그 외에도 겸손과 관련하여 기억할만한 구절들이 많아, 정리 차원으로 발췌해 둔다. 참고하시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책인데,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겸손은 내가 경험한 모든 가치 중에 가장 세심하며 현명한 태도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공손함,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예의를 잃지 않는 정중함, 상황을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고 담담하고 점잖게 대할 줄 아는 신중함. 겸손은 이 모든 마음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태도.' 이게 바로 겸손함이다. (4쪽)


겸손은 고상함과 품위를 지니고 있지만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그로 말미암아 과소평가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겸손이란 바로 그 과소평가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6쪽)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에는 이런 바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는 바람말이다.(49쪽)


우리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화려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나 외적인 권력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진정한 시민들이 항상 강조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즉, 선은 보이지 않는 그릇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늘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깊이 들어가야 하며, 표면 아래를 파헤쳐봐야 한다. 휘황찬란하게 화려한 것은 결코 선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런 것은 효과, 환상, 기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압도하고 위협할 뿐 본질적인 것은 숨긴다. (98쪽)


남이 정한 경계는 나를 가두지만, 내가 정한 경계는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이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세우는 표시다. (...) 스스로 경계를 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을 줄이고 제한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힘에 집중할 수 있다. (...)

우리 자신이 그 경계를 직접 세우면, 그 경계로 인해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겸손한 태도는 자신의 경계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정한 경계 안에서 더 깊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101~102쪽)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태도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과소평가받을 수 있다. 이는 앞에서도 이미 이야기한 바 있듯이, 분명히 장점이다. 적절한 시기에 과소평가받는 행운을 누린 사람은 나중에 인상적인 신뢰를 얻기가 더 수월해진다. 물론 겸손함이 그걸 노린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만 자신의 성과에 대해 크게 언급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자연히 외부로부터의 저항도 훨씬 적게 받는다. 과대평가된 사람은 약점이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겠지만, 과소평가받은 사람은 두려울 게 별로 없다. (112~113쪽)


겸손함은 자신감과도 관련이 깊다. 스스로를 믿는 사람만이 자신을 낮추는 표현도 할 수 있다. 간혹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부족한 자의식의 표현은 겸손이 아니다. 내면이 강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겸손한 행동으로 등장하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고, 자신이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반면 내면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점에 대해 인지하고 이를 가감 없이 인정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엄격하기 때문이다. (113쪽)


자신과 친해지려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신뢰할 있으며, 자존감도 안정된다. (115쪽)


신뢰를 얻는 방법에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잘난 체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자연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141쪽)


"그렇게 겸손하게 굴지 마. 당신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거든."(146쪽)


당신은 존중받아야 하며, 품위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품위를 잃으면 겸손의 기초도 사라진다. 막강한 권력에 제대로 방어할 수 없을 때도 품위를 지킬 수 있다. (165쪽)


앞으로 나서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가 가져다주는 의외의 기쁨은 또 있다. 나를 다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다는 것, 과대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현실 가능한 목표 안에서 계획한 대로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등이다. (165~166쪽)


그 어떤 사람도 당신을 소진시킬 권리는 없다. 당신은 비상시를 위해 에너지를 남겨둬야 하며, 그 누구도 당신이 비축해 둔 에너지를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사실 비상용 에너지의 본질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에너지를 비축하려면 스스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 방해받는 않는 시간이 있어야 하며, 자신만의 자유 공간이 필요하다. 없으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168쪽)



<추신>

노자의 첫 번째 보물인 '사랑'이 떠오르게 만든 책은 클레어 키건의 책들이다. <맡겨진 소녀>에서는 자신이 친자식도 아닌 여자 아이를 맡아 기르는 부부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는 성당기관에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주인공 펄롱이 등장하는데, 모두 노자가 이야기하는 '사랑'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요즘 노자에 꽂혀 뭐든지 노자와 연관시켜 보려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노자중독'에서 아직 벗어나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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