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엥겔스와 함께 쓴 세상 뒤집기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45년 초, 27살의 마르크스는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었어요. 파리에서의 생활이 갑자기 위험해진 거예요. 프로이센 정부가 프랑스 정부에 압력을 넣어서 마르크스를 추방하라고 요구했거든요. 마르크스가 『전진!』이라는 독일어 신문에 기고한 글들이 너무 급진적이었던 거죠. 특히 프로이센 왕을 직접 비판한 글이 문제가 되었어요.
결국 마르크스는 1845년 2월, 아내 예니와 갓 태어난 딸 예니와 함께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해야 했어요. 브뤼셀은 당시 유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였거든요. 하지만 마르크스에게는 조건이 있었어요.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던 거죠. 물론 마르크스는 이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브뤼셀에 정착한 마르크스는 곧 엥겔스와 재회했어요. 엥겔스는 영국에서 돌아와서 독일 바르멘에 있는 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르크스의 소식을 듣고 브뤼셀로 찾아온 거예요. 두 사람은 파리에서 만난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아왔거든요.
엥겔스는 마르크스보다 두 살 어렸지만, 실무 경험이 훨씬 풍부했어요. 영국 맨체스터에서 아버지의 방직공장을 관리하면서 자본주의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고,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이라는 책도 썼어요.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서 마르크스의 생활을 도와줄 수 있었죠.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어요. 마르크스는 철학적 깊이가 있었고, 엥겔스는 현실 감각이 뛰어났거든요. 서로의 장점을 보완할 수 있는 완벽한 파트너였어요. 엥겔스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어요. "마르크스는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상가였다. 나는 그의 조수 역할을 했을 뿐이다."
1845년 여름, 두 사람은 함께 영국 여행을 떠났어요.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영국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마르크스는 맨체스터의 공장들을 둘러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파리에서 만난 독일인 수공업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산업이 펼쳐져 있었거든요.
특히 마르크스는 영국의 도서관에서 경제학 자료들을 열심히 읽었어요.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원전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었죠. 또한 영국 정부의 공식 통계 자료들도 접할 수 있었어요. 노동 시간, 임금 수준, 생활 조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들 말이에요.
영국에서 돌아온 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동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과거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었어요. 특히 헤겔 좌파 철학자들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었거든요.
당시 독일에서는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 같은 철학자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었어요. 이들은 모두 헤겔의 제자들이었지만, 각자 다른 방향으로 헤겔을 비판하고 있었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들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특히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라는 책이 큰 화제가 되고 있었어요. 슈티르너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거든요. "오직 나만이 중요하다. 사회, 국가, 도덕 같은 것들은 모두 허상이다"라는 식이었죠. 이런 주장이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런 경향을 매우 위험하다고 봤어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행동이 필요한데, 슈티르너 같은 사상은 사람들을 더욱 이기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두 사람은 1845년 가을부터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 책의 목적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 헤겔 좌파 철학자들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 둘째, 자신들의 새로운 철학인 '역사적 유물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작업은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두 사람이 함께 쓰다 보니 문체도 다르고, 강조점도 달랐거든요. 게다가 분량도 계속 늘어났어요. 처음에는 간단한 비판문을 쓰려고 했는데, 결국 7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 되어버렸어요.
더 큰 문제는 출판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어떤 출판사도 출간을 꺼렸거든요. 결국 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살아있을 때는 출간되지 못했어요. 20세기에 들어서야 부분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했고, 완전한 형태로는 1932년에야 출간되었어요.
마르크스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어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자신의 철학적 양심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설령 출간되지 않더라도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실제로 이 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사상을 명확히 정립할 수 있었어요.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독일 이데올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요. 첫 번째 부분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새로운 철학인 '역사적 유물론'을 제시해요. 두 번째 부분에서는 헤겔 좌파 철학자들, 특히 막스 슈티르너를 신랄하게 비판해요.
먼저 역사적 유물론부터 살펴볼게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를 보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어요. 기존의 철학자들은 역사를 '정신'이나 '이념'의 발전 과정으로 봤거든요. 헤겔이 대표적이었죠. 헤겔은 '절대정신'이 역사를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해나간다고 봤어요.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정반대로 생각했어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적 생활 조건'이라는 거였어요. 쉽게 말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아가는지가 그들의 사고방식과 사회 제도를 결정한다는 뜻이에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요. "인간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고, 입고, 거주해야 한다. 따라서 첫 번째 역사적 행위는 이런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유물론'의 핵심이에요. 물질적 생산이 모든 것의 기초라는 거죠. 사람들이 어떤 도구로 일하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고, 어떻게 분배하는지가 그 사회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봉건 사회를 생각해보세요. 농업이 주된 생산 방식이었고, 토지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어요. 그래서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고, 농민들은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경제적 관계가 봉건제라는 정치 제도와 기독교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거예요.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업이 주된 생산 방식이고, 공장과 기계가 중요한 생산수단이에요. 그래서 이것들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해요. 이런 경제적 관계가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와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거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토대와 상부구조' 이론으로 설명했어요. 경제적 생산 관계가 '토대'이고, 정치, 법률, 종교, 철학 같은 것들이 '상부구조'라는 거예요. 토대가 바뀌면 상부구조도 따라서 바뀐다는 거죠.
하지만 이것이 기계적인 관계는 아니에요. 상부구조도 토대에 영향을 줄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법률이 바뀌면 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죠. 다만 장기적으로는 토대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투쟁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봤어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유명한 말도 이 책에서 처음 나왔어요. (나중에 『공산당 선언』에서 더 유명해졌지만요.)
계급투쟁이란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계급 사이의 갈등을 의미해요. 고대 사회에서는 노예주와 노예, 봉건 사회에서는 영주와 농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대립한다는 거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런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봤어요. 낡은 생산 관계가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게 되면, 새로운 계급이 등장해서 기존 질서를 뒤엎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고대 사회에서 봉건 사회로,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왔다는 거죠.
그렇다면 자본주의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라고 답했어요.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고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는 사회가 온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이때의 공산주의는 아직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다만 계급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막연하게 제시했을 뿐이에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또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중요하게 다뤘어요. 이데올로기란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사상 체계를 의미해요.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받는 대우가 다르잖아요. 이런 식으로 현실을 가리고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거예요.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종교를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봤어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이 맥락에서 나온 거예요. 종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고통을 참고 견디게 만들고, 내세에서의 보상을 약속함으로써 현실 변혁 의지를 꺾는다는 거였죠.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단순히 종교를 비판하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종교가 왜 생겨났는지, 왜 사람들이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지를 분석했어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적 위안을 찾게 된다는 거였죠. 따라서 종교를 없애려면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막스 슈티르너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져요. 슈티르너는 『유일자와 그의 소유』에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거든요. "나는 나의 대의 위에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라고 선언하면서, 사회, 국가, 도덕, 심지어 인류애까지도 모두 거부했어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슈티르너의 이런 주장을 '소부르주아적 환상'이라고 비판했어요. 개인이 사회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거였죠. 인간은 본래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슈티르너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어요. 슈티르너는 관념 속에서만 '자유로운 개인'을 상상할 뿐, 실제로는 부르주아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거였어요. 진정한 개인의 해방은 사회 전체의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또한 '분업'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어요. 분업이란 사회적 노동이 여러 부문으로 나뉘는 것을 의미해요. 농업, 수공업, 상업 등으로 나뉘고, 각 부문 안에서도 더 세분화되죠.
분업은 생산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특정 직업에 고착시키는 문제가 있어요. 한 사람이 평생 똑같은 일만 해야 하는 거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분업의 족쇄'라고 불렀어요.
그들이 꿈꾼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분업이 사라져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매우 시적으로 표현했어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목축을 하고, 식사 후에는 비판을 할 수 있다.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축업자나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말이다."
핵심 개념 정리
역사적 유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창시한 역사 이론이에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정신이나 이념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 조건이라는 관점이에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는지가 그 사회의 정치, 문화, 사상을 결정한다고 봐요.
토대와 상부구조: 사회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이에요. 경제적 생산 관계가 토대이고, 정치, 법률, 종교, 철학 같은 것들이 상부구조예요. 토대가 바뀌면 상부구조도 따라서 바뀐다는 거죠. 하지만 상부구조도 토대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계급투쟁: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에요.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계급 사이의 갈등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봐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유명한 말이 이를 요약해요.
이데올로기: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사상 체계예요. 현실을 왜곡해서 보여주고, 기존 질서가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처럼 포장하는 역할을 해요. 종교가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라고 봤어요.
분업: 사회적 노동이 여러 부문으로 나뉘는 현상이에요. 생산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사람들을 특정 직업에 고착시키는 문제가 있어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분업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봤어요.
실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강조했어요. 철학은 단순히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였죠. 이는 나중에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테제로 정리돼요.
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완전히 성숙한 형태로 나타난 첫 번째 저작이에요. 여기서 제시된 역사적 유물론은 나중에 모든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기초가 되었거든요. 비록 당시에는 출간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사상 발전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특히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핵심 명제는 지금도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관점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그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거든요.
27살의 마르크스와 25살의 엥겔스가 브뤼셀에서 함께 쓴 이 책은 두 사람의 평생 우정과 협력의 출발점이기도 해요.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두 천재가 만나서 세상을 뒤바꿀 이론을 만들어낸 거죠. 비록 당시에는 "쥐들만 갉아먹었다"고 마르크스가 농담했지만, 결국 세계사를 바꾼 중요한 저작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