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했지만

by 김경윤

저술의 배경과 마르크스의 삶

1845년 봄, 브뤼셀에서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고 있던 마르크스는 문득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싶어졌어요. 엥겔스와 함께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저작을 쓰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핵심 사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꼈거든요.

마르크스는 특히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어요. 포이어바흐는 마르크스에게 큰 영향을 준 철학자였거든요.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유물론을 주장한 사람이었죠. 마르크스도 한때 포이어바흐의 열렬한 추종자였어요.

하지만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실제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너무 추상적이고 수동적이었거든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마르크스는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어요. 포이어바흐 철학의 문제점들과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한 거였죠. 총 11개의 짧은 문장들이었는데, 각각이 하나의 독립된 명제였어요.

이 노트는 마르크스의 개인적인 메모였어요. 출간할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죠. 실제로 마르크스는 이 노트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엥겔스조차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야 이 노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든요.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 노트를 발견했어요. 엥겔스는 이 짧은 메모들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이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엥겔스는 이를 "새로운 세계관의 천재적 맹아가 담긴 귀중한 문서"라고 평가했어요.

엥겔스는 1888년 자신의 저작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료』의 부록으로 이 테제들을 처음 공개했어요. 그때 제목도 엥겔스가 붙인 거예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라고 말이죠.

이 11개의 테제는 마르크스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마지막 11번째 테제인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는 마르크스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예요.

하지만 이 테제들이 쓰여진 1845년은 마르크스에게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였어요. 브뤼셀에서의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엥겔스와의 우정도 깊어지고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을 확립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마르크스는 이때 27살이었어요.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헤겔, 포이어바흐 같은 거대한 철학자들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확신했어요. 이 테제들은 그런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죠.


저술의 핵심 내용 정리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개 테제는 각각 독립된 명제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결된 철학 체계를 이루고 있어요. 마르크스는 이를 통해 기존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어요.

제1테제는 기존 유물론의 한계를 지적해요.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으로만 파악되고, 인간의 감성적 활동, 실천으로서는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기존의 유물론자들은 물질 세계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마치 거울처럼 현실을 반영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이 현실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능동적으로 바꿔나간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자연을 생각해보세요. 기존 유물론자들은 자연을 그냥 주어진 것으로 봤어요. 하지만 인간은 농업을 통해 자연을 바꾸고, 공업을 통해 자연을 가공해요. 자연도 인간의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죠.

제2테제는 진리의 문제를 다뤄요. "인간적 사고에 객관적 진리가 속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다. 실천에서 인간은 자신의 사고의 진리성, 즉 현실성과 힘을 증명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진리를 추상적으로 논증하는 것보다 실천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만든다"는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책상 앞에서 논리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보고, 그 모순을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제3테제는 환경과 교육의 문제를 다뤄요. "환경이 인간을 바꾼다는 유물론적 교설은 환경이 인간에 의해 바뀐다는 것, 그리고 교육자 자신이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환경이 나쁘니까 사람들이 나빠진다"고 말해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면 누가 그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요? 결국 사람이 바꿔야 하는 거잖아요. 환경과 인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거예요.

제4테제는 종교 비판을 다뤄요. 포이어바흐는 종교를 인간 본질의 소외된 형태라고 봤어요.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신에게 투사한 것이라는 거였죠. 마르크스는 이런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요.

"종교적 환상의 세속적 기초가 그 자체로부터 분리되어 구름 속의 독립적 왕국으로 고정되는 것은, 이 세속적 기초가 자기 자신과 모순되고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다."

즉, 종교가 생기는 이유는 현실이 모순되고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사람들이 종교적 위안을 찾게 된다는 거죠. 따라서 종교를 없애려면 현실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11테제는 가장 유명한 테제예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을 보여줘요. 기존의 철학자들은 세상이 왜 이런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설명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하지만 이것이 이론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올바른 이론이 있어야 올바른 실천도 가능하거든요.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었어요. 이론은 실천을 위한 것이고, 실천은 이론을 검증하는 것이라는 거였죠.

이 테제들에서 마르크스는 '실천'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내세워요. 실천이란 단순한 행동이 아니에요.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활동을 의미해요. 인간이 자연과 사회를 의식적으로 바꿔나가는 활동 말이에요.

마르크스는 실천을 통해 주체와 객체, 사고와 존재, 이론과 현실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봤어요. 인간은 실천을 통해 객관적 현실을 바꾸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바뀌어간다는 거였죠.

예를 들어 혁명을 생각해보세요. 혁명가들은 사회를 바꾸려고 투쟁해요. 그 과정에서 사회도 바뀌지만, 혁명가들 자신도 바뀌어요. 더 의식적이고 조직적이 되죠. 이렇게 주체와 객체가 함께 변화하는 것이 실천의 특징이에요.


핵심 개념 정리

실천(Praxis):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개념이에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목적적인 활동을 의미해요. 인간이 자연과 사회를 바꿔나가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바뀌어가는 활동이죠. 이론과 현실, 주체와 객체의 대립을 극복하는 열쇠라고 봤어요.

능동적 유물론: 기존의 유물론이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기만 했다면,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현실을 능동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을 강조해요.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환경을 바꾸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이론과 실천의 통일: 마르크스는 이론과 실천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어요. 올바른 이론은 실천을 통해서만 검증될 수 있고, 효과적인 실천은 올바른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고 봤어요. 둘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예요.

객관적 진리: 마르크스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봤어요. 하지만 그 진리는 추상적 논증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실천에서 효과가 있는 이론이 참된 이론이라는 거였죠.

혁명적 실천: 단순히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실천을 의미해요. 마르크스는 철학의 목적이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혁명적 실천을 가장 중요한 철학적 활동으로 여겼어요.

감성적 활동: 기존 철학에서는 인간을 수동적으로 감각하는 존재로만 봤지만, 마르크스는 인간을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존재로 봤어요. 인간은 단순히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였죠.

사회적 존재: 마르크스는 개인을 사회와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았어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봤어요. 따라서 개인의 해방도 사회 전체의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어요.


이 11개의 테제는 비록 짧지만 마르크스 철학의 모든 핵심 요소들을 담고 있어요. 여기서 제시된 '실천' 개념은 나중에 마르크스의 모든 이론의 기초가 되었거든요. 『자본론』에서 분석한 자본주의도 결국 실천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고, 공산주의도 실천을 통해 실현해야 할 목표였어요.

특히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11번째 테제는 20세기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어요. 레닌, 마오쩌둥, 체 게바라 같은 사람들이 모두 이 말에 감동받아 실제 혁명에 나섰거든요.

하지만 이 테제가 단순히 행동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에요. 마르크스는 무작정 행동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이론에 기초한 의식적인 실천을 강조한 거예요. 그래서 그는 평생에 걸쳐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했던 거죠.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는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요.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지만, 이해만 하고 끝나면 안 된다는 거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27살의 마르크스가 브뤼셀의 어느 봄날 아침에 노트에 적은 이 짧은 메모들이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사상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때로는 가장 간단한 진리가 가장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죠.

포이어바흐에 관한 11개 테제는 마르크스 철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에요. 여기서 시작된 문제의식이 『자본론』까지 이어지고, 여기서 제시된 실천 철학이 전 세계 혁명 운동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거든요. 짧지만 강력한,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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