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Jan 08. 2021

한스친친 : 중국 요리에 전하는 가벼운 입맞춤

ESSAY


엄마가 어느 날, 중국집을 오픈했다. 식당을 했던 것도 요리를 배웠던 것도 아니었다. 식탁 앞에 앉은 엄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난 지금까지 누가 뭐래도 너희들을 잘 키웠다고 자부해.
그러니까 이제 엄마도 나갈 거야. 엄마는 여기서 성공을 할 건데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성공’이 아닌 ‘사람도 얻을 수 있는 성공’을 할 거야.  

  

아이 셋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살아오던 엄마는 그렇게 엄마에서 한스친친의 한미숙 사장님이 됐다.   


        

중국집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삿날, 식구들과 거실 바닥에 둘러앉아 나눠 먹는 짜장면과 숙취에 시달리는 속을 달래줄 새빨간 짬뽕을 배달해 먹는 배달 중국집. 입학식, 졸업식날 동그란 원형 테이블에 앉아 탕수육, 양장피 같은 중국 요리를 시켜 먹는 중국 요리집. 한스친친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넓고 깨끗한 식당 내부, 친절한 직원들,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맛깔스러운 음식들. 한스친친은 근사한 가족 외식을 하기에도 단체 모임을 하기에도 딱 좋다.     


“우리 가게 대표 메뉴는 어향동고에요. 어향동고는 생 표고버섯에 다진 새우를 넣고 어향소스를 뿌린 음식인데, 100분이 드시고 가면 100분이 다 맛있어서 어우!하세요. 아, 멘보샤도 우리 집 대표 메뉴. 다진 새우도 최고급을 쓰거든요. 다른 재료도 마찬가지예요. 맛이 다르죠. 우리 총주방장님 실력이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어향동고부터 팔보쟁반짜장, 멘보샤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요리들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 입 안 가득 풍기는 깊은 맛에 또 한 번 눈이 커진다. 한스친친의 문을 열기 전까지는 중국 요리의 세계가 이렇게 무궁무진한지 몰랐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조금 더 비싼 요리로는 팔보채, 양장피…알고 있는 요리라고는 그 정도가 다였다. 사장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장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요리와는 전혀 연이 없는, 그저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원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어요. 바쁘게 집에서 살림하고, 애 셋 키우고. 그러다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까,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고요. 애들도 학교 가고 학원 가느라 저녁 늦게 들어오고, 남편도 사업하느라 바쁘고. 그럼 나는 이제 뭘 해볼까, 하다가 선배 언니가 하던 중식당에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딱 1년 동안, 집에 아무도 없는 10시부터 3시까지 식구들 모르게요.”     

짬뽕을 좋아하던 사장님은 중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관련된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사장님에게 아르바이트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처음에는 서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학예발표회 무대에 올랐을 때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에 한 달 정도는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무슨 말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손님들 앞에 서면 백지가 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일하는 언니한테 물어봐서 해야 하는 일을 몽땅 다 적었어요. 맨 처음에 와서 뭐부터 해야 하는지, 순서를 막 적은 거죠. 그리고 손님들이 뭐 물어보면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나는 아는 게 없는 거야. 그래서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중식 요리가 뭐가 있는지를 공부했어요. 다른 가게는 뭘 팔지, 이건 어떤 맛이지. 딱 1년. 그때 당시에 선배 언니가 저한테 점심 장사를 맡겼었는데 제가 1년 만에 점심 매출을 20만 원에서 120만 원까지 맞춰놨죠.”     


1년을 채우고 사장님은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가게에서는 붙잡았지만, 스스로 세운 계획이 딱 1년이어서 미련 없이 가게를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이름’을 건 가게를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광운대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임대 종이가 붙은 가게를 보게 됐어요. 근데 그때 마침 선배 언니가 동업을 제의했고, 가게를 계약했죠. 물론 이번에도 식구들 몰래. 근데 갑자기 선배 언니가 동업을 못 한다는 거예요. 잔금은 남았는데 가정주부가 무슨 돈이 있어. 대출도 받고 친구들한테도 빌려서 겨우겨우 메꿔서 계약하고 공사 들어갔을 때, 그때 남편하고 애들한테 말했죠.”     


세 아이를 식탁에 앉혀놓고 사장님은 말했다. 

마지막 순간, 내 직원들이 한스친친을 떠올렸을 때 나라는 사람을 추억해줄 수 있는 가게를 만들 거야. 

사장님은 목표가 생겼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올인했다. 그렇게 1년을 버텼고 광운대점은 1년 만에 흑자를 봤다. 

“광운대점이 자리를 잡고 보니까, 손님들이 좀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광운대점은 좀 협소했거든요. 근데 여기는 주차장도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고, 공간도 넓고. 사실 큰딸의 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우리 다경이가 몇 년 전에 그랬거든요. 엄마, 엄마는 내 멘토야. 거기에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 내가 하나는 더 해야겠다. 하나는 더 이뤄줘야 얘한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죠.”   


사장님의 큰 딸인 다경씨는 올해부터 가게로 출근해 엄마를 돕고 있다. 다경씨는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많은 걸 배운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챙기고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에게 마음을 다해 서비스하는 ‘한미숙 사장님’을 보며 다경씨의 목표는 자연스레 ‘사장님처럼’이 됐다.      



“저는 우리 가게 식구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꿈도 이루고, 돈도 벌고. 직원들이 각자 원하는 페이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하하) 아, 확실히 꿈을 이루고 있는 직원도 있어요. 사실 여러 사정이 겹쳐서 광운대점을 닫으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우리 가게에서 오래 일한 애기 조리장이 한번 해보고 싶다길래 그래. 그럼 너 우리 집 큰아들 해라, 하면서 그 친구한테 광운대점을 건네줬죠. 이제 여기가 본점이에요. 거기는 가맹점이고. 근데 너무 행복해요. 저는 그 돈 벌어도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는데 걔는 그걸로 꿈을 이룬 거잖아요. 나는 그 꿈을 이뤄준 거고. 행복하죠.”     


행복은 전염성이 빠르다. 한 사람이 행복해지면 그 사람의 주변 사람이 행복해지고 행복은 옆에서 또 옆으로, 넓게 퍼져나간다. 그래서 사장님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사장님의 가게에서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손님들한테도 비슷해요. 저는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맛은 기본이고 거기에 친절한 서비스가 더해져야겠죠? 항상 손님들에게 관심을 두고 챙겨드리고. 전 우리 가게가 친절한 가게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중국어로 ‘가벼운 입맞춤’이라는 뜻의 친친. 한스친친은 ‘한 씨 성을 가진 여자가, 실력 있는 주방장이 최고의 재료로 만든 중국 요리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장님이 한스친친에서 전할 다음 입맞춤은 무엇일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한미숙’ 사장님의 다음 입맞춤을 기다려본다.                





 정유진

사진 김싱싱

인터뷰 정유진 천예원

매거진의 이전글 꿀소담 : 소담하게 담아낸 건강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