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과 자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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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도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난 당당했다.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맛보는 그 순간 난 담담했다.
그리고, 고요했다.
오랜 시간 동안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높은 성에 갇혀 살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든 '사랑'이라는 그 큰 덫 안에 갇혀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난 학습된 그곳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을 헛디뎠다. 질퍽 거리는 땅을 밟았다.
순간 거만, 자만, 교만 뭐 이런 감정과 느낌이 나를 다번에 꿀꺽 삼킨줄 알았다.
그 감정들은 내가 결코 느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 배웠다.
난 다시 쪼그라들고 움츠려 들었다. 무서웠다. 낯선 감정들이다.
어색한 감정이다.
다시 움츠려 들자니 억울했다.
자책감, 억압, 죄책감, 친숙하고 익숙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항아리 단지 안에서 난 안전하다 느끼고 있었다. 또다시 그 안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 없다.
10여 년 동안 맞서 싸워온 감정들.. 물러설 수 없다.
'니 업이다, 니업이 두터워서 그렇다, 절에 가면 다 된다, 네가 다 잘못해서 그런 거다, 네가 양보해라, 네가 그냥 그러려니 이해해라, 아빠한테 이렇게 좀 말해줘, 이건 비밀이야. 네가 엄마 아빠 모시는 조건으로 유산 좀 챙겨주게, 딸은 출가외인이야, 넘 참 등신 같구나. 아.. 또 너무 많은데... 아.. 아파.. 그만해 엄마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을 몸이 기억을 한다. 난 고작 어린 여자 아이였는데...
세뇌되어 나를 버린 삶을 살다가, 어렵게 그 굴레에서 빠져나와 처음으로 세상을 만났는데...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난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무서움과 두려움이 사라진 순간'
'공포가 사라진 순간'
그 순간이
'자만심'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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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