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깨끗하고 맑게 걸러내고 싶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다가 발이 미끄러져 침대 아래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다.
침대 옆에 협탁처럼 쓰는 철제 서랍장 모서리에 머리 측면이 부딪히면서 약간의 혹과 멍이 올라왔다.
소리는 또 어쩜 요란하게 쨍 쿵 거렸는지, 남편이 벌떡 일어나서 나를 살폈다.
너무 아프고, 어이없고, 남편에게 미안하고…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다시 누웠는데 잠이 다 달아나 돌아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려고 누워있었는데 하도 잠이 안 와서 시계를 보니, 1시간 반이 지나있었고
부딪힌 부위가 닿지 않게 한 쪽으로만 누우니 더 잠이 안 오고, 눈을 감고 있어도 여러 가지 생각과 통증만이 머리를 휘젓고 다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오늘 쓸 이야기로 쓰다 만 글이 있었지만, 다시 휴지통에 넣었다.
빗소리가 들리는 새벽, 지난밤 직장동료에게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엉겨 붙어서 혼탁한 마음이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는지..
자기 직급에 맞는 권리는 요구하면서 책임과 의무는 남에게 슬쩍 넘기고, 배려해 주면 고마워하지도 않고 당연시하는 그런 태도.
정말 질리게 싫은 스타일이다.
남을 비난하는 말을 늘어놓으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까 봐 조심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말에는 늘 후회가 따를 수 있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는 마음으로 애써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 농담 삼아 던졌던 말, 호구..
처음엔 화가 좀 났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라 나름 ‘호구처럼 굴지 마’라고 내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놀리듯이 ‘호구’라고 했을 때, 같이 웃으면서도 ‘저 그 말 되게 싫어하고, 기분 나빠요, 그렇게 말하지 마요.’
라고 말하면서 표현을 했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일 호구짓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알겠다.
사람에게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은연중에 상대방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말로 내뱉어진다는 것을.
사장님이 나를 호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나를 호구로 생각했으니까 나올 수 있는 말이었겠구나.
이렇게 신뢰가 깨지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반복되면서 일하는 동안 감정노동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다.
나는 이 일이 재미있어서,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 건데. 계속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생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다 한결같겠냐마는, 그래도 최소한 자기 역할과 책임에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오늘 만나서 또 어떤 이야기를 늘어놓을지, 아님 아무 일 없는 듯 모른척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예상되는 이야기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정리를 하면서
새벽이 흘러갔다.
무슨 쓸데없는 시간 낭비인가 싶고, 차라리 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혹시라도 소심한 내가 감정폭발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하는 말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과한 비난과 모욕적인 말로 감정싸움만 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 일할 사이니까, 일적으로 깔끔하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또 예행연습을 반복 또 반복하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막상 사람 좋은 것 같이 보여도, 일로 만나면 그렇게 치사한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해도 본모습은 감출 수 없고, 시간이 흐르면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것.
(뭐, 나는 안 그러겠냐. 나 자신은 안 그럴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마음을 거두고, 실망으로 얼룩진 이 관계에 더 이상의 기대를 버린다.
인간관계는 참 어려운 것인데, 일로 만난 인간관계는 더 어려운 것 같다.
간밤에도 어렵게 잠들었는데, 새벽에 충돌사고 후 잠들지 못해 수면부족으로 맞이하는 아침.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오늘도 출근하는 K직장인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