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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UP주부 Apr 24. 2023

'       _       '

작은 따옴표 밖으로 튀어나온 속엣말


딱 일주일 전 월요일,




학교가는 아이를 배웅하고 의자에 앉았다. 홀로 남은 고요가 시작되자 스마트폰을 열어젖혔다. 자주 가는 사이트 몇 군데를 클릭 클릭 하며 무심히 보다가, 어??? 액정 가운데, 그러니까 딱 접히는 부분에 스크래치가 있다. 없었는데, 있다. 어제까지도 좀전까지도 없었는데, 불현듯, 딱 보인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다. 이렇게 선명한데 어떻게 못봤을 수가 있지? 한 군데만 그런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두 군데가 그렇다. 언제부터 이랬던 거지??? 접는 부분의 보호필름이 갈라지기 시작해서 아예 벗겨버리고 쓴지 몇 달 됐다. 그래서 이렇게 됐나? 아닌데? 보호필름은 액정 갈라짐을 예방하려고 붙이는 건 아니니까, 분명 그것 때문은 아닌데. 그러니까 내가 필름을 벗겨서, 내 잘못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닌 건데. AS 받으러 갔는데, 고객의 불찰 어쩌고 하면서 무상으로 안 해주면 어쩌지? 홈페이지 Q&A 중에 해당 사항이 있는지 찾아봤다. [보호필름이 손상되면 임의로 벗기지 말고 AS 센터를 방문할 것, 보호필름 없이 사용하는 건 권장하지 않음] 몇몇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보호필름을 벗긴 채 임의로 계속 사용해서 이렇게 된 거라며 나한테 책임을 전가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점점 부풀어오른다. 보호필름을 벗기고 임의로 사용한 기간을 좀 뻥을 쳐서 몇 주라고 할까? 아니지. 보호필름이랑 액정 갈라짐은 상관 관계가 없는데도 내가 그런 거짓말을 꾸며내는 게 맞나? 오늘 아침 갑자기 맞닥뜨린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초래된 데 있어 내 잘못이 없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나는 그저, 열고 닫는 휴대폰을 열고 닫으며 사용한 것밖에 없는데... AS를 받기 위해 센터를 향해가는 내내, 무상으로 무사히 AS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어느정도 불안했다. 혹시라도 직원한테 의견을 내거나 변명을 하거나 사정을 하거나 할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예상 답변을 떠올리면서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불안과 긴장도 다 부질없는 애씀 같았다. 원치 않는 일렁임을 잠재우기 위해 마음을 내려놓는 것으로 통제력을 발휘했다. 액정에 금이 간 것을 어찌할 수 없다면, 무상 보호필름 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겠지, 그러면 되지 뭐, 하면서...


"네, 그러네요, 스크레치가 있네요. (휴대폰을 떨어뜨린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손으로 몇번 매만지더니) 액정을 갈아야 하는데, 앞에 보이시는 패드에 서명해 주시면 바로 수리해 드릴게요.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혹시 쓰시면서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돈 내라기는커녕, 다른 불편은 없었는지 살뜰히 물어봐 주길래, 쓰려고 열었는데 화면이 바로 꺼져서 다시 접었다 펴야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고 했더니, 액정을 교체하면 그 부분도 해결될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아, 그냥 감수했던 불편까지 이참에 해결된다니, 이게 웬 떡이야 싶었다. 기분 좋게 대기하는 40분은 금세 지나갔다. 기술자님은 다시 한 번 온 친절을 다해 수리한 사항을 설명해 주셨다. 오늘 아침까지도 내 폰의 일부였던 액정의 헐렁한 속을 보여주시며, 이 부분에서 보내는 신호가 요 부분으로 전달되면서 작동하는 건데, 접고 펴기를 하다보면 그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신호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배터리까지 이~~~부분이 다 새로 교체되었기 때문에 불편하셨던 점도 개선될 거라고 했다. 아~ 배터리를 포함해 아주 통으로 갈았다고? 받아든 폰을 열었다 접으니 길들지 않은 새것의 뻑뻑함이 느껴졌다. 1년 넘게 사용한 폰을 들고 들어왔는데, 센터를 나서는 내 손에는 새폰이 들려있다! 아무래도 황송한 생각이 들어서 삼성의 통큰 AS 서비스에 고마웠다가, 쓸수록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하자 AS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접었다 폈다 하는 스마트폰 판매를 유지하는 대기업의 저의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치른 기계값에 비하면, 액정 정도는 찢어질 때마다 교체해줘도 남는 장사인 건가? 그런가보다. 스크래치가 순순히 일어난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에 액정을 순순히 바꿔주는 것이겠지만, 언제까지 이같은 문제에 대해 친절한 AS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느 기간까지는 무상으로 해주지만 이후로는 아주 친절하게 "AS기간이 끝나서 00만원 내셔야 합니다."라는 안내를 받게 될테지. 5년도 더 된 (접지 않는) X-폰은 오~래 전에 내 손을 벗어나 아들 손에서 잘 쓰여지는 중이고, 액정이 깨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쭈욱 써먹어질 것 같은데. 이 제품은 떨어뜨리지 않고 조심히 쓴다 해도 어느 날엔 이별해야 하겠구나. 정이 아쉽고 본전이 아까운 생각이 들지만, 물건이랑 백년해로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므로,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갑자기 새삥한 폰을 손에 쥐었고, 지저분함까지 익숙해져서 차마 어쩌지 못했던 폰커버를 이제는 정말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이 모든 일은 어제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겪은 일을 심경 변화에 주목하여 써봤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김금희 단편소설집을 읽는 중이었는데(에세이 편독자라 소설은 가뭄에 콩 나듯), 아마도 그것에 영향을 조금 받은 것이지만(진심으로 아주 많은 영향을 흡수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오? 라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머쓱해져서 다만 속으로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작은따옴표를 생략하고 속엣말을 조금 자유롭게 쓴 것..그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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