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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n 21. 2024

커피 한 잔에 잠 못 이루는 밤

커피 못 마시는 내가 커피 학원에 다니게 됐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건 아니다. 그럼 계획적이었나? 그것도 아니다.


나의 커피 역사는 이렇다. 첫 시작은 서울우유의 삼각형 모양의 커피우유였다. 전공 시험 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곤 했던 그 시절, 친구들이 커피로는 모자라 에너지 드링크를 마실 때 나는 커피우유를 마셨다. 공기업 다닐 적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직장 동료들을 따라 카페에 들렀는데, 이는 오후 업무를 위해 꼭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혈해야 했던 그들 때문이었다. 테이크 아웃 컵에 얼음을 잔뜩 담은 차가운 커피를 주문하는 그들을 기다리곤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디카페인을 취급하는 카페가 드물었다. 가끔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적에 음료 메뉴를 훑던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논 커피 메뉴로 돌아갔다. 


커피와 담배, 둘 다 즐기지 않던 나는 돈을 아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기호식품이라는 점에서 담배와 더불어 커피는 나에게 쓸데없는 오락비였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밥을 먹고 2차로 카페에 갈 때면 에이드나 차를 주문하곤 했다. 아니,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를 왜 마시는 거야?


그런 내가 호주에 가게 됐다. 호주에서는 커피를 커스텀 주문할 수 있다. 커피를 주문하면 바리스타가 꼭 물어보곤 한다. 흰 우유(Full milk) 괜찮아? 하고.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일반 우유를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꽤 많은 선택지가 있다. 락토프리, 오트, 아몬드, 소이 그리고 코코넛밀크. 그것뿐인가, 카페인에 약한 나 같은 사람들에겐 디카페인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약하게도 마실 수 있고 아주 뜨겁게 주문할 수도 있다. 한국과 다르게 선택지가 많은 호주에선 커피를 주문할 때 진상은 없다. 내 체질에 맞게, 입맛에 맞게 주문하는 게 당연하다.


처음 가본 카페는 멜버른의 유명한 브라더 바바 부단이다. 플랫화이트가 맛있다고 해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와, 이건 뭐지? 부드럽고 고소하잖아?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맛있는 커피라면 나도 커피 마시는 현대인이 되겠어! 그 이후로 카페에 가면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호주에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하면 머그나 유리잔에 담아준다. 예쁜 라테아트는 덤이다. 그렇게 나는 우유가 들어간 따뜻한 커피에 꽂혀버렸다. 


내가 주로 주문하는 건 디카페인 플랫화이트, 가끔 카페인이 필요한 날엔 플랫화이트 약하게-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짝꿍은 그건 커피가 아니야-라며 고개를 흔들곤 했다. 참나, 이것도 커피라고. 나는 수면욕이 강한 사람이라 밤에 잠을 설치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외치곤 했다. 커피 맛이 덜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침 햇살을 즐기며 마시는 디카페인 플랫화이트를 사랑했다.


호주의 커피 문화는 특별하다. 일찍 문을 열고 일찍 문을 닫는 카페 덕에 매일 서핑을 하는 나는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 하며 파도를 기다리는 아침을 누릴 수 있었다. 파도가 없는 날엔 작업실이, 만남의 장이 되어주기도 했다. 커스텀 주문에서 느껴지는 배려의 온도가 좋았다. 호주에서의 길고도 짧은 1년 6개월의 워홀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플랫화이트만 주야장천 마신 커피의 ‘ㅋ'자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돌아오자마자 커피학원에 등록해버리고 만 것이다. 


첫째 주 수업을 시작했다. 여느 학문의 시작이 그렇듯 커피의 역사, 종류를 배웠다.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추출을 해봤고, 여러 커피를 맛보며 구체적인 향과 맛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와, 너무 재밌잖아? 처음으로 우유가 들어간 커피가 아닌, 드립커피를 마셔봤다.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카페인이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걸 느꼈다. 카페인의 존재감은 컸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종종 맞이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일하다 전혀 다른 분야로의 이직 한 번,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 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경험은 늘 짜릿하다. 뿌옇게 껴 있는 안개를 걷어내고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는 이 설레는 기분을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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