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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n 28. 2024

예민한 당신의 이름은 커피

사실은 말야

바리스타가 일정한 퀄리티의 커피를 내려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같은 원두, 같은 메뉴인데 어떤 날은 시고 밍밍한데, 어떤 날은 쓰고 텁텁하다면 그건 단순히 바리스타의 손맛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지 않은가.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전 포터필터에 원두를 담고 평평하게 펴주는 걸 레벨링이라고 하고 기계에 장착하기 전에 꾹 눌러주는 걸 탬핑이라고 한다. 커피 머신에서 일정량의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연습을 했다. 분명히 같은 양의 원두를 갈아 넣고 같은 손으로 탬핑을 하고 추출을 했다. 추출하는 양은 딱 30ml다. 같은 양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데 어떤 때는 빨랐고 어떤 때는 오래 걸렸다. 기계가 문제였을까? 다음 사람이 두 번의 에스프레소를 뽑았을 때 균일하게 추출되더라. 아, 그럼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너무 세게 눌렀을까? 너무 많이 넣었을까? 아니다, 같은 양의 원두를 넣었는데 뭐가 문제일까. 머리 위 퀘스천 마크가 떠올랐다. 균일한 원두의 양을 사용하면 균일한 에스프레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아니다, 커피는 되게 예민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많았다. 포터필터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물기도 변수가 되고 고르게 담지 않는 것도 변수, 고르게 누르지 않는 것도 변수다. 그뿐인가. 입자의 크기, 그러니까 어떻게 원두를 분쇄하는가도 변수다. 온도, 습도에 따라 원두의 맛이 변하기도 한다는 이 변덕쟁이. 커피는 아주 예민보스다. 


같은 양의 에스프레소를 같은 시간으로 추출하는 게 왜 중요하냐고? 맛이 다르다.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같은 양을 추출하는데 기준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면 쓰고 텁텁하고 너무 적게 걸린다면 시고 밍밍해진다. 아, 커피는 예민하고 나는 예민함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섬세함이 없다. 



어린 나는 꽤 예민했다. 특히 후각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여름에 빨래한 옷을 잘 말리지 않았을 때 나는 그 냄새를 못 견뎌했다. 그 냄새를 품은 교실 짝꿍과 하루종일 함께 수업을 들었어야 해야 했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쿰쿰함을 견딜 자신이 없던 나는 짝꿍을 바꿔달라며 간곡히 담임선생님께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우유 특유의 그 비린내를 싫어했던 나는 몰래 초콜릿 파우더 가루가 들어있는 제티 스틱을 부어 달달한 초콜릿 우유로 만들어 먹곤 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담배 냄새가 싫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청소년기를 거치고 성인이 되어 가혹한 사회를 겪은 지금의 내 성격은 무던한 편에 가깝다. 이제 나는 쿰쿰함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고 때에 따라 담배 냄새도 참을 수 있다. 가리는 음식도 딱히 없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푹 잘 수 있다. 식감과 맛은 별로지만 건강에 좋은 거라고 하면 꿀떡 삼키기도 한다. 외식을 할 때도 내가 주문한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그냥 먹는다.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 물에 휘릭 헹구고 바로 먹는데 베이킹 소다나 식초로 꼭 씻어야 했던 예민한 우리 엄마는 나를 게으르다고 했다. 한창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위생에 신경 쓰기 시작할 때 엄마는 그전부터 밖에서 사 온 것들을 씻어서 냉장고에 넣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포장된 거라면 전부 다. 콩나물, 고기, 두부, 냉면 팩도 예외는 없다. 사람 많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밥에서 하루 에너지가 나오는 거라며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우리 엄마는 취향이 확실하다. 


예민하다는 거, 까다롭다는 거, 그건 취향이 확실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내 안의 예민함을 꺼내봐야겠다. 조금은 까칠하고 예민한 삶을 살아볼까. 산미 있는 원두가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초콜릿 향이 나고 단맛이 강한 커피가 좋아요-라고 얘기해 본다. 아니 사실은, 그거 맛없다고 얘기하는 짜릿하고 상쾌한 기분을 상상해 본다.



입이 닿는 부분에 초콜릿 파우더를 뿌려주는 호주 카푸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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