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라스 Jul 05. 2024

명품 하나 없는 30대 여자가 커피를 배울 때

과연 나는 게이샤를 마시게 될까?

커피에도 명품이 있다. 게이샤를 들어봤는가? 음,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그 게이샤인가...?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에티오피아의 산지 명이다. 한 잔에 5천 원도 아니고 1만 원도 아니고 3만 원이나 하는 커피란다. 밥값보다 비싸다. 이 비싼 커피를 대체 누가 마시는 걸까? 


커피 원두는 이름도 길다. 콜롬비아 프리미엄 후일라 수프리모. 왜 이렇게 기냐고? 이것만 알면 된다. 이름은 길 수록 좋고 비싼 것, 즉 명품일 확률이 높다는 거다. 보통은 국가명, 농장, 품종, 등급, 가공방법으로 명기한다. 다른 예로는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G1 내추럴'이 있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구지라는 지역의 함벨라 농장에서 내추럴 가공방식으로 생산된 G1 등급의 원두라는 뜻이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커피는 바로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내추럴'이다. 파나마의 에스메랄다라는 농장에서 재배한 내추럴 가공방식의 원두. 이 원두는 한 국제심사위원이 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 걸로 유명하다. 여기서 *게이샤는 에티오피아의 산지 명이다. 사실 게이샤는 에티오피아에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말이다. 파나마는 중남미 대륙에 있는 걸 고려해 보면 정말 멀리 이사 온 셈이다. 에티오피아 게이샤 지역의 나무가 병충해에 강하다고 해서 중남미 대륙으로 가져와 파나마 고지대에 심어봤는데 그게 맛이 있었다고 한다. 파나마에 이사오니 위치, 기후 모든 조건이 좋았던 거다. 그렇게 명품커피는 파나마 게이샤 품종이 됐다. 


원두계의 구찌, 샤넬, 에르메스라고 한다. 한 잔에 3만 원 까지도 한다니 명품이 맞나 보다. 커피 수업을 들으면 정말 많은 원두를 접하고 많이 맛본다. 내가 내린 것, 선생님이 내린 것도 다르지만 사람들이 좋은 원두를 쓰는 이유가 있다는 건 알겠다. 커피 잘 내리는 바리스타가 내린 명품 커피는 말을 할 것도 없이 다르겠지만 초보인 내가 내리고 맛을 봐도 산미가 좋고 아로마가 풍부한 게 평범한 원두와는 확실히 다른 좋은 원두라는 건 알겠다. 




내 또래 친구들은 명품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명품 지갑, 명품 시계, 혹은 명품 가방. 반면 나는 명품이 하나도 없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한다. 어떤 옷에 걸쳐도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고, 돈 값을 한다고. 어느 정도 공감을 한다. 대개 명품은 깔끔한 디자인이니 무난하게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돈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는 이미지가 연상되어 그런가 이뻐 보이기도 한다. 


20대 초반, 발품 팔아 예쁘고 트렌디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곤 했다. 명품을 살 정도의 재력이 아니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굳이 명품이 나한테 필요한가? 나는 더 멋지게 꾸미고 다닐 수 있는데? 하는 객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공기업에 입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동기들이 하나둘 명품을 사고 새 차를 뽑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명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와, 인물이 확 사네! 진짜 이건 예쁘다, 잘 샀다고 칭찬을 하는 순간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묻어났을지는 몰라도 내가 소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는 더 많은 경험을 하는 데에 투자하고 싶었다. 


호주에 가면서 그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그간 가장 많이 소비한 건 옷이었는데 매년 입지도 않는 옷을 한가득 사곤 했다. 대체 이건 언제 입으려고?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가져간 옷은 많지 않았다. 티셔츠, 반바지 각각 몇 벌에 경량 패딩 정도. 하지만 그간의 소비습관대로 처음엔 옷 가게에 가서 세일하는 옷을 기쁘게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옵샵(op shop)을 알게 되면서 내 습관이 확 바뀌었다. 옵샵은 세컨핸드, 그러니까 중고매장이다. 호주의 중고매장에는 다양한 물건이 있다. 예쁜 찻잔부터 LP, 마라톤 메달, 카메라, 옷, 이불보, 침낭, 가구, 전기매트, 신발, 음식 등 모두 누군가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기부한 것이다. 이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저렴한 가격에 재판매된다. 호주 어디에 살던 옵샵은 쉽게 찾을 수 있고, 찾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나에게 옵샵은 그날 이후 심심하면 들르는 곳이 됐다. 구경하다 보면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일하면서 필요한 신발이나 옷을 옵샵에서 구하기도 했다. 반대로 내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기매트와 옷가지를 정리해 기부한 적도 있다. 이렇게 여러 군데의 옵샵을 들러 내가 필요한 것들을 찾으러 다니면 운명처럼 내 것을 만나기도 한다. 또 이미 누군가의 손을 거친 물건이라 새 물건을 사는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호주 사람들은 참 제멋대로 입고 다닌다. 사람들이 개성을 중시한다고 느낀 부분은 딱히 유행이라는 게 없는 것 같은 패션에서의 대중없음이다. 물론 스포츠탑과 레깅스를 입는 여성들이 많이 보일 때도 있다. 워낙 야외에서 러닝을 많이 하다 보니 운동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장을 보고 돌아가기도 하기 때문에 쇼핑몰 안에서 일하는 내게 자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뭉뚱그려 표현하기에는 모두 다 스타일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원피스를 입고 어떤 사람은 수영복만 입고 다닌다. 모두가 다르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내가 편한 옷을 입는다.


매일 아침 서핑하는 루틴 덕에 많은 시간을 자연 곁에서 보내게 되면서 깨달은 점은 옷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내게 필요한 건 몇 벌의 수영복과 티셔츠 정도. 사실은 옷에서 수영복으로 관심이 옮겨간 거라고 볼 수 있다. 단점은 수영복이 이미 많이 있지만 또 수영복을 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온다는 거? 현재 내가 지닌 것 중 가장 많은 아이템은 아마 수영복일 것이다. 


내 짝꿍은 옵샵 쇼핑으로 돈을 벌기도 한다. 지난번에 나와 함께 간 옵샵에서 카메라를 60불에 구매했는데 집에 와보니 카메라 작동도 잘 되고 중고 시세가 300불이 넘는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본인이 사용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200불 대에 온라인으로 팔아 약간의 돈을 벌었다. 한국의 당근마켓 같은, 옷을 전용으로 중고거래하는 어플이 있다. 물론 흥정도 가능하고 배송도 된다. 상태가 괜찮은 옷을 1, 2불에 구입할 수도 있다. 그는 이를 십분 활용해 나이키, 발렌시아가와 같은 이름 있는 브랜드 옷을 저렴한 가격에 발굴해내기도 했다. 요즘 마켓에 나갈 준비를 하느라 심심하면 옵샵에 가 보물 찾기를 한다. 


명품이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자신감을 주는 존재라면 말이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서핑을 매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옵샵을 둘러보다 우연히 찾게 된 보물이 주는 기쁨이, 시시콜콜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명품인 것 같다. 여전히 나는 엄마가 어디에선가 오래전에 사다 준, 해지고 손때가 잔뜩 묻은 가죽 카드지갑이 좋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고. 비록 게이샤 커피는 아니지만 적당히 괜찮은 원두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고집을 조금 더 부려보려 한다. 




이전 02화 예민한 당신의 이름은 커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