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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Aug 20. 2024

어쩌다 커피, why not?

예쁜 그림이 담긴 라떼를 받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나를 보러 한국에서 호주까지 날아와준 애정하는 친구와 퍼스 시내를 거닐었다. 그래도 나름 5년 넘게 진행해 오던 사이드 프로젝트인, '세상의 다양한 자기만의 why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의 배경을 한국에서 호주로 확장하기 위해 서호주에 온 것이다. 구독자 수는 많지 않지만 유튜브 채널을 뽀짝뽀짝 운영해오고 있었는데, 유튜브 시장에 좀처럼 노출도 안 되고 반응도 없어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쯤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자 겸사겸사 오게 된 것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친구 덕에 우리는 매일 아침 카페에 들렀다. 거리를 걷다 눈여겨본 이탈리아 스타일의 카페에 들어갔다. 장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년의 바리스타가 익숙한 듯 커피를 내려주셨다.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드렸으나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내심 서운했지만 첫 시도가 나쁘지 않았다며,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틈틈이 관광도 놓치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공원에도 가보고 묵고 있는 호스텔 주변도 얼쩡거려 보고, 전시도 보러 다녔다. 호주에는 무료 전시 박물관, 미술관이 많은데 그중 한 군데인 PICA(Perth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를 방문했다. 영감 가득한 전시를 둘러보고 큐레이터에게 너무 잘 봤다고, 이런 공간을 제공해 줘서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스몰톡이 시작됐고 그 자리에서 인터뷰도 짧게 따올 수 있었다. why not?이라고 반문하던 멋진 그녀는 만나서 즐거웠다며 커피 할인 쿠폰을 내밀었다.


다음날 오전, 근교로 이동을 하기 전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를 찾아보던 차에 전날 받은 할인쿠폰이 떠올랐다. 주머니에서 고깃 고깃 쿠폰을 꺼내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골목을 걸었다. 호스텔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모퉁이 카페였다. 늦은 아침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즐기는 호주인들이 그득했다. 홍콩 분위기가 물씬 나는 멋진 카페였다. 우리가 메뉴를 보며 한국어로 얘기를 하니 사장님이 반갑게 한국분이냐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 반가워요! 아인슈페너와 롱블랙을 받아 마시고 우리는 커피 너무 맛있다고 사장님에게 따봉을 날려드렸다. 동시에 눈이 마주친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너무나 흔쾌히 응해주셨다.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에 다시 방문해 짧게 인터뷰를 했다. 커피가 좋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왔다가 바리스타로서 라떼아트 대회를 나가 우승도 해보고, 이렇게 카페도 운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눈빛은 커피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빛났다. 와, 라떼아트 대회라니. 커피는 커피인 줄만 알았는데 대회라는 것도 있구나.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됐다. 아, 커피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넓고 깊은 분야일 수 있겠다는 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라떼아트 수업이 시작됐다. 라떼의 세계로 넘어왔다. 라떼아트를 하기 위해 중요한 건 잘 뽑은 에스프레소, 거기에 적당한 온도로 공기주입과 혼합을 잘 해준 스티밍 우유. 라떼아트를 선보일 도화지가 주어졌다. 처음 배우는 건 기본 하트다. 컵에 꽉 찬 하얀 하트. 컵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삼분의 일 지점에서부터 우유를 확 부어서 천천히 가운데로 옮겨준 뒤 위로 들어서 꼬리를 빼주면 된다는데, 내가 만든 이 형상은 뭐지? 그림도 곧잘 그리곤 했던 나인데,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은 곧 근거 없음으로 판명 났다. 그냥 붓고 그리면 그림이 그려질 줄 알았는데 쏙 컵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림을 도화지 위로 띄워서 그리는 것이 어려웠다. 라떼아트 연습은 첫 잔을 뽑아 만든 카푸치노 두 잔을 다시 피처에 담아 코코아 파우더를 이용해 에스프레소와 같은 색을 만든 후 똑같이 연습한다. 크레마 안정화, 그리고 푸어링 지옥이 펼쳐졌다.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내가 우유인지, 코코아 파우더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른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낙차를 이용해 잘 섞이도록 해주는 작업인 크레마 안정화, 그림을 그리는 작업인 푸어링을 반복한다. 


기본 하트를 그리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림은 잘 안 그려진다. 근데, 재밌다. 언젠가 내가 인터뷰 한 라떼아트 대회 우승자 바리스타의 눈빛을 떠올리며, 카페에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한 손님에게 멋진 로제타를 그려줄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오늘도 기본 하트를 그려본다. 세게 붓고, 그림이 말려들어갈 때 천천히 가운데로 이동하며 잔을 세워주고, 잔이 찼을 때 피처를 들어 올려 하트의 꼬리를 만들어준다. 내가 배운 건 아직 기본 하트 뿐이므로, 잔에 꽉 찬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은 라떼를 만드는 아침이란.


꽉 찬 하트는 아직 멀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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