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하는 사람이에요

과연, 미래의 나는

by 올라스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 몰랐다. 잘 못 그렸을 때 유화처럼 위에 덧 바를 수도 없다. 원샷 원킬,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그마저도 망설이면 안 된다. 망설이다가 우유 거품이 뭉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우유를 스티밍 할 때 공기주입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혼합을 하면서 어떤 온도에서 멈춰야 하는지 분배를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게 다 예민하고 어렵다. 얼마나 숙련되어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보는 것과 같은 멋진 아트를 뚝딱 해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감히 커피 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일을 쉽게 봤던 것인가.


수료식 당일, 시험을 봤다.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합격 띠를 목에 건 나는 마냥 쉬울 줄만 알았던 커피가 삼 개월 간 나를 얼마나 고생시켰는지를 생각하며 창피한 감정에 고개를 저었다. 과연 미래의 나는 커피에 미치는 과정을 거쳐 커피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호주에 있을 때 가장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가 있다. 일본에서 온 메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와는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우리는 가끔 서로를 각자 나라 사람 같지 않다며 신기할 정도로 닮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나의 서핑 메이트이자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언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내가 조금 더 먼저 태어났지만. 그녀와는 무려 두 번의 로드트립을 함께 했는데 타즈매니아에 있을 때였다. 강풍이 부는 오전에 서핑을 하고 저녁에는 함께 스테이크를 굽고 샐러드를 곁들인 멋들어진 저녁을 준비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밤을 즐기고 있는데 그녀는 갑작스럽게 친구의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같이 스노우보드를 타러 산에 가곤 했던 가까운 친구였는데 산에서 실종되었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그러면서 그녀는 스노우보드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몇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냥 삼켜버렸다. 자기 전 그녀를 꼭 안아줬다. 그녀의 고맙다는 한 마디에 으앙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핑이라는 취미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햇볕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피부, 누군가와 부딪히게 된다면 마주할 상처들, 바다 컨디션에 따라 조류에 휩쓸리고 혹시라도 리쉬가 끊어진다면 익사의 가능성, 바다생물의 위험성까지 도사리고 있는 취미가 서핑이다. 하지만 보드에 몸을 올리고 패들을 해서 라인업에 들어갈 때, 깨끗한 파도를 멋들어지게 타는 서퍼들을 볼 때, 내 사이즈의 파도가 올 때 온몸에 퍼지는 도파민 때문에 가끔 잊곤 한다. 뼛속까지 자극추구형인 나는 그런 서핑을 그만두지는 못 할 거다. 아마도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서핑을 하겠지.



수료식이 끝나고 동기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한 동기가 새로 취직한 카페에 탐방을 갔다. 커피를 배우고 난 뒤의 카페 방문은 새로웠다. 머신은 뭘 쓰는지, 어떤 종류의 커피를 파는지, 인테리어, 조명에 차례로 눈길이 갔다. 나는 콜드드립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내가 주문한 원두의 컵노트는 히비스커스, 플럼이었다. 아이스커피가 과일과 꽃이 블랜딩 된 부드러운 차 같았다. 컵노트가 궁금해서 주문했는데 디카페인이라 밤에 즐겨도 좋을 것 같았다. 커피는 생사가 오가는 위협이 없는 분야이지 않나. 이 안전하고도 고요한, 하지만 분명 치열한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일부 동기들은 호주에 가기 전 한 번 더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이 버거를 먹고 가볍게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 우리 건강히 잘 지내고 커피 하다가 또 만나요.

가을바람처럼 살랑이던 그녀의 웃음이 귓가에 머물렀다. 커피를 계속하다 보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어딘가에 취직을 하고, 내 가게를 차리고 혹은 조금 더 공부를 이어나가면서 그렇게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커피 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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