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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것의 비밀

감정에서 의미로, 의미에서 존재로 — 좋아함이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by 김용진

1. 좋아함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형태’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상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장소.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일이 아니다.
그건 어떤 대상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관계’를 맺는 일이다.


좋아함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나와 대상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동시에 나 자신을 확인한다.
결국 ‘좋아함’은 관계의 언어이며,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2.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의 세계


우리가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크게 나누면 관계 중심, 사물 중심, 의미 중심, 이상 중심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관계 중심의 좋아함은 사람과 나 자신을 향한다.
우리는 가족, 친구, 연인, 스승 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 안에는 안정감, 공감, 인정, 그리고 함께 있음의 위로가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 역시 존재한다.

자신의 성격, 재능, 가능성에 대한 애정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으며
성숙할수록 그 형태가 바뀌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이해의 결과다.


사물 중심의 좋아함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경험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책, 시계, 자동차, 혹은 단골 카페처럼 손에 잡히는 대상이 그 예다.
그 안에는 추억과 상징, 그리고 ‘나의 일부’로 느껴지는 정서적 만족이 있다.

또 다른 형태로는 ‘경험 그 자체’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
햇살이 비치는 오후의 순간, 좋은 음악이 흐를 때의 감각,
그 모든 건 짧지만 강렬한 쾌감으로 남는다.


의미 중심의 좋아함은 행위나 가치에 대한 몰입에서 온다.
우리가 일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일이 주는 성취감 때문이며
글쓰기나 운동처럼 꾸준히 반복하는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 정의, 배움 같은 개념이나 철학적 가치에 대한 애정은
신념의 일관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좋아함은 경험을 통해 점점 더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이상 중심의 좋아함은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향한다.
우리는 목표나 꿈, 혹은 되고 싶은 미래의 나를 좋아한다.

그 감정은 기대와 동기부여로 작동하며
현실과의 간극이 클수록 때로는 더 간절하게 타오른다.


좋아함은 이렇듯 즉각적이기도 하고, 점진적이기도 하며
때로는 나의 정체성과 맞닿는 오래된 감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좋아한다는 것은 단일한 감정이 아니라
다양한 결을 가진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3. 좋아함의 구조: 감각에서 의미로, 의미에서 존재로


좋아함에는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감각적 좋아함, 두 번째는 이성적 좋아함, 그리고 마지막은 존재적 좋아함이다.
이 세 단계는 단순히 감정의 세기가 아니라, 나와 대상의 관계 깊이를 보여준다.


감각적 좋아함은 “이게 좋다”에서 시작한다.
좋은 향기,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음악처럼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이 단계의 좋아함은 반복적이며, 쉽게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감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성적 좋아함은 “왜 좋은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이 단계의 좋아함은 가치와 의미를 담는다.
일, 철학, 신념 같은 것들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 나의 생각과 방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좋아함은 단순한 감각을 넘어 인생의 방향으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존재적 좋아함은 “이것 없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내 정체성과 결합될 때
그 좋아함은 헌신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된다.

이 단계의 좋아함은 더 이상 변덕스럽지 않다.
그건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자각의 감정이다.


결국 좋아함은 감각에서 시작해 의미를 거쳐 존재로 향하는 여정이다.
우리는 단순히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통해 ‘나’를 확인하며 성장해간다.


4. 좋아함의 철학: 존재를 향한 감정의 진화


좋아함은 단순히 즐거움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아가 확장되는 과정이다.


감각적 좋아함은 짧고 가볍다.
새로운 자극과 취향의 변화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이성적 좋아함은 의미를 통해 지속된다.

가치관이나 환경이 바뀌어도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한다.
존재적 좋아함은 가장 오래 남는다.
관계와 자아의 성숙에 따라 더욱 깊어지고, 삶의 일부가 된다.


감각의 차원에 머무는 좋아함은 쉽게 식지만
의미의 차원으로 발전한 좋아함은 삶에 방향을 준다.

그리고 존재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좋아함은
결국 나 자신을 완성하는 통로가 된다.


좋아함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통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게 된다.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 감정은 일시적인 열정이 아니라, 존재를 규정하는 문장이 된다.


좋아함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있음의 방식이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곧,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의 대답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탐색하는 일은 결국 ‘나’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는 늘 한 문장이 남는다.


나는 좋아할 수 있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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