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논란은 이제 그만~, 그 취지에 집중하세요...
연말이 되면 조직에서는 성과평가 시즌이 된다.
누군가는 조용히 기대하고, 누군가는 괜히 불안해지고, 또 누구는 “이번에도 그냥 저번처럼 B겠지”라며 체념한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좀 더 깊은 질문이 깔려 있다.
“우리는 도대체 공정하게 평가받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다.
그 고민의 중심에 흔히 ‘정(正)과 반(反)’으로 비유되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있다.
칸트 철학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조직의 공기를 바꾸는 제도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생기는지 들여다보면, 그 풍경이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절대평가의 철학은 심플하다.
“기준을 명확히 만들고, 그 기준을 충족하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선명한 구조다.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는 이 정(正)의 구조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다.
한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준대로 평가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옆 팀장 평가를 보니까… 기준이 저랑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직원들은 왜 우리 팀만 까다롭냐고 하고, 저는 매년 설명하느라 진이 빠져요.”
절대평가의 의도는 역할 기준의 명확화, 일관성 있는 평가, 개인의 성장 방향 제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준 설정이 애매하거나, 담당자마다 기준의 품질이 다르다.
결국 직원들은 이렇게 느끼게 된다.
“절대평가라고 했는데요… 결국 팀장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면 이게 절대평가가 맞나요.”
절대평가의 핵심 문제는 기준을 ‘어디까지’, ‘어떻게’ 명확히 만들 것인가에서 터진다.
많은 조직에서 KPI(핵심성과지표)·KAI(핵심활동지표) 항목을 만들어놓지만, 그 항목을 해석하는 방식은 부서마다 다르다.
한 실무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제가 A를 받았던 기준으로 보면 올해도 충분히 충족했는데… 올해 팀장이 바뀌니까 갑자기 ‘이 정도는 B’라고 하더라고요. 기준이 아니라 사람 따라 평가가 바뀌는 기분이었어요.”
이런 순간 구성원들은 절대평가의 ‘정(正)’을 신뢰하기 어렵게 된다.
이상은 정(正)이지만, 현실은 미묘한 감정과 해석이 얽히며 균열을 만든다.
절대평가의 구조는 구성원들에게 특정한 심리적 파동을 만들어낸다.
- ‘기준이 애매하다’는 불안감
직원이 기준을 정확히 몰라 불확실성이 커진다.
- 부서 간 격차가 만든 상대적 박탈감
옆 팀은 A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 팀은 거의 없으면, 직원들은 공정성을 의심한다.
- 팀장 스타일에 따라 갈리는 성과의 운명
똑같은 성과도 어떤 팀장은 A, 어떤 팀장은 B를 준다.
이쯤 되면 평가가 기준이 아니라 ‘사람의 스타일’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절대평가가 가진 장점보다 ‘현실적 허점’이 더 크게 보일 때, 조직에서는 평가제도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다.
절대평가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상대평가다.
상대평가는 공정성을 ‘기준’이 아니라 ‘비율’로 관리한다.
한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서마다 기준이 제각각이니까 기준 대신 비율을 정한 거죠. 예를 들어 A는 10%, B는 60% 같은 식으로요. 그러면 적어도 조직 전체의 균형은 맞출 수 있으니까요.”
상대평가의 핵심 의도는 명확하다.
구성원의 성과를 구간별로 뚜렷하게 나누고
조직 전체의 성과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인사 운영의 균형을 확보하는 것
하지만 이 방식에도 현실적 그늘이 있다.
한 팀장은 이렇게 고백했다.
“솔직히 올해 우리 팀은 모두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비율을 맞춰야 하니까 누군가는 C를 줘야 했죠. 그 순간 평가가 성과가 아니라 ‘순번’이 된 느낌이었어요.”
상대평가는 경쟁을 통해 성과를 끌어올리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의 부작용도 분명하다.
- 불필요한 경쟁의 촉발
‘팀 전체 목표’보다 ‘내 점수’가 더 중요해지기 쉽다.
- 협업 약화
협력하면 팀은 좋아지지만, 개인 점수가 낮아질 수도 있는 구조가 생긴다.
- 중위권 압착과 하위권 낙인
평균은 늘 평균이고, 하위는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한 구성원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C를 받고 나서 자존감이 무너졌어요. 그 뒤로는 뭘 해도 ‘나는 이미 뒤처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왔어요.”
절대평가는 기준 중심의 세계이고, 상대평가는 비율 중심의 세계다.
둘 중 하나가 완전히 옳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두 방식 모두 근본적으로 제한이 있고, 어느 방식이든 구성원은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절대평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상대평가는 실제 성과와 상관없이 순번이 결정된다.
그래서 조직 내부에서는 이런 말이 종종 들린다.
“절대평가 하면 기준이 문제고, 상대평가 하면 사람 문제가 생기고… 그럼 도대체 뭐가 정답인 걸까요.”
정(正)과 반(反)의 충돌은 단순히 철학적 논리 구조가 아니라, 조직이 실제로 매년 겪는 고민이다.
이 충돌 속에서 조직은 자연스럽게 ‘합(合)’을 찾게 된다.
그 합(合)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담는다.
평가 방식은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절대 vs 상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두 방식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조합해야 한다.
평가의 목적은 ‘측정’이 아니라 ‘성장’이어야 한다.
한 임원은 이런 말을 했다.
“평가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가 결국 모든 걸 결정해요. 잘한 사람을 가려내는 게 목적이라면 상대평가가 맞고, 모두가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절대평가가 맞죠.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둘 다 필요합니다.”
이 말은 제도의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평가제도는 공학이 아니라 문화이며, 사람을 다루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절대평가는 명확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모호해지고,
상대평가는 공정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쟁을 지나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조직은 이렇게 결론에 다다른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방식과 조직의 문화가 핵심이다.”
정(正)도 반(反)도 완벽할 수 없다.
그러나 두 방식을 깊이 이해하고, 조직의 상황에 맞는 균형점—즉 ‘합(合)’—을 설계할 때 비로소 평가가 사람을 키우는 도구가 된다.
결국 성과평가의 목적은 ‘잘했는가를 재는 것’이 아니라, ‘잘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단계는 조직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합(合)’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다.
그 지점에서 평가제도는 비로소 구성원의 성장과 조직의 성과를 동시에 이끄는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