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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하 Oct 18. 2022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뜨겁던 화상 자국은

하루 만에 다 나아버렸다.



 낭만적인 관념에 문외한인 나다. 그런 나의 이름이 어쩌다 보니 ‘사랑’이다. 흘러가는 유행 노래에 제일 많이 나오는 만만한 개념. 수많은 일상 사랑을 부르고 죽이고 사랑에 울고 웃고•••



#사랑이라는 인간성


 한편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랑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인간은 사랑을 노래하곤 했다. 모든 예술분야에서 다루는 ‘사랑’을 유의 깊게 보곤 하는데,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건 대중가요다. 많은 노래 가사에 온갖 환유와 은유를 거친 내 이름이 나오곤 한다.


 이렇듯 언제나 예술의 소재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랑이다. 인간은 무섭도록 정이 많다. 고대부터 인간을 표현한 말들은 대체로 그렇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동물은 많지만 사회적인 동물은 인간뿐이다. '관계'라는 것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이런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 이 모호한 개념은 인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랑과 '사랑함'


 사전적 정의로는 '사랑'에 '-하다'가 붙은 표제어가 '사랑하다'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사랑함, 둘 중 뭐가 먼저일까. 사랑한다는 행위는 꽤나 동적이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할 말은 많지만 덧붙이지 않겠다.



#인간이 사랑하는 모든 것


 인간은 특히 지식을 사랑한다. 우리는 ‘철학(哲學)’이라고 번역해 부르지만 ‘philosophy’의 뜻은 ‘지식에 대한 사랑’에서 왔다고 한다. 세계와 본질을 갈망하는 일명 만학이다.


 보이지 않는 지식과 더불어, 큰 접점이 없을 셀럽을 사랑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관계성이라는 전제가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니! 그리고 이런 현상이 근래의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사물마저 사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안고 자던 인형, 사회초년생일 때 처음 샀던 차, 어머니가 선물해주신 옷 등 애착이 가는 물건을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그 안에 담긴 서사가 감정을 만들기도 하니까. 애칭을 붙여주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 쓴 물건은 도깨비가 된다고 하죠. 영혼이 없는 무생물에 신령스러운 혼이 깃든다는 이야기는 옛사람들의 ‘사랑’스러운(?) 사고가 그대로 반영된 게 아닐까.


 인간은 자신들의 손을 거친 사물을, 하다 못해 형체 없는 인공지능까지 사랑할지도 모른다. 영화 <her> 에서처럼. 신화의 주인공처럼 사랑으로 몰락할 수도 있고, 사랑이 항상 행복만은 아닐 텐데, 왜 인간은 나약하게도 모든 것을 사랑하는 걸까? 어쩌면 인간이란 사랑할 줄 아는 동물이 아닐까.



#합일


 철학자들은 사랑이라는 관념보다는 세계 전체를 보곤 한다. 다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제 기억에 남는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 사랑, 당신과 나는 하나예요. 나는 곧 당신이고 당신은 곧 나와 같아요’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트루러브에 이마를 탁 치며,, 음음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아는 사랑은 그저 ‘합일’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종교적인 관점에서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가족 간의 사랑을 생각해보면 안 맞는 점을 참다 참다, 결국 해탈해버리니까.

 형제자매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싸우다가도, 밖에서 맞고 온 동생을 보고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갈 수밖에 없다. 말하고 보니 웃기지만 이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 아닌 다른 관계에서는 분명 어려운 일이다. 재고 따지는 것 없이 편안한 관계. 동시에, 가족이란 뭐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성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다. 비빌 언덕이랄까요.




 예컨대 사랑은 이데아일지도 모른다. 그 완벽을 모방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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