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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인데 왜 집집마다 다르게 생겼을까

생경한 구조의 체코식 공동주택

by 조수필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말.

생.경.하.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 와서 어색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의 현실과 잘 들어맞는 말이다. 어쩌다 외국인이 된 내 눈에는 온통 낯선 것들 투성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생경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집이다. 체코에 있는 우리집은 아파트로 분류되는데 이제껏 내가 쌓아 올린 공동주택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뜨렸달까.



A타입, B타입 말고
그냥 My Type


'59㎡ A타입, 84㎡ B타입'

어느 건설사 할 것 없이 우리나라 아파트의 전용 면적은 대체로 규격화되어 있다. 면적만 그런 게 아니라 내부 구조도 마치 복사해서 붙여 놓은 것처럼 일정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우리집이었던 울산의 신혼집 역시 그랬다. 거금의 돈을 들여 삐까뻔쩍한 인테리어로 환골탈태를 한다면 또 모를까 윗집이나 아랫집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긴... 집집마다 구조가 다른 걸까? 무슨 아파트가 이렇게 제각각이지? 모름지기 아파트란 정형화의 표본 아닌가?



맨 처음 이 집에 입성했을 때 ‘넓지도 않은 복도에 무슨 문을 이렇게 많이 냈을까’라고 생각했다. 저마다 속을 알 수 없는 다섯 개의 문이 잠시 혼란을 일으켰는데 가장 의뭉스러운 문은 욕실과 안방 사이에 뚫려있다. 커다란 나무로 된 입구를 지나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방이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우리집 주방이다. 그렇다면 거실은 어디에 있을까? 방처럼 생긴 부엌의 맨 끝자락까지 걸어가면 ㄴ자 구조로 거실이 붙어있고 그 끝에 있는 유리문을 열면 외부 테라스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핵심은 이 아파트 안에 있는 집들 중에 이런 구조를 가진 건 우리집 뿐일지 모른다는 거다. 한국의 아파트 부녀회장처럼 다른 집을 방문할 수 있는 직위가 없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넉 달 동안 생활하며 지켜본 바로는 그렇다. 이 건물 어디에서도 통일성을 찾기가 어렵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화이트의 <네모의 꿈> 中



그야말로 이 노랫말처럼 살아왔다. 남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때 안정감이 생겼다. 네모난 아파트에서 다른 이들과 규격을 맞추면서 어떻게든 평균 안에 들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그 모든 노력은 해외살이를 이유로 잠시 중단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던 차에 이 낯선 환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생각의 구조를 바꿔보는 건 어때?’




조금 낯설지만
그래서 재밌는 우리집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이 건물 아래 똑같은 집은 없다. 어떤 집은 ㄷ자로 돼 있고, 어떤 집은 ㄹ자로 지어졌다. 어떤 집은 테라스가 안방에 붙어있다면 또 어떤 집은 주방으로 나 있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창호의 위치나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집집마다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이 불편했다. 한 아파트에 사는데 A집은 우리보다 거실이 더 넓게 빠진 것 같고 B집은 테라스 위치가 더 좋은 것 같고. 이런 식으로 접근하니까 한도 끝도 없었다. 이래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는 걸까.

따지고 보면 집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기는 나의 못난 사고방식이 문제였던 거지. 아무튼 체코에 있는 모든 아파트가 이렇게 개성이 충만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가 떠올렸던 ‘네모의 집’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한 걸음 떨어져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같은 지붕을 뒤집어썼다고 해서 502호와 602호가 꼭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집의 생김만 그런 게 아니라 사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옆집에 사는 현지인 가족이 스테이크에 와인을 기울인다면 우리집은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는 것처럼.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모순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해외살이를 결정해놓고 막상 현실로 맞닥뜨리니까 뭐가 어떻게 다른지만 찾아내고 있다.

반대로, 여기까지 와서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은 생활만 하다가 돌아간다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훗날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남아있는 시간 동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경한 내가 되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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