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댁의 집콕 라이프
'선머슴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여성스러운 구석도 없다. 그저 신이 나를 여자로 살게 하셔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따름이다. 오죽하면 날 낳고 기른 우리 엄마는 "너는 생긴 것만 여자애야” 라고 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겉모습이라도 그래 보여서.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내게도 구석구석 살펴보면 어딘가 여자다운 면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모습은 굳이 찾아봐야 할 정도로 드물다.
가령, 엄마와 여동생이 백화점 쇼핑을 하는 날에는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언제 와? 이것저것 보기는 많이 봤는데 손에 건진 건 없어” 라는 전화를 받고 뒤늦게 합류해서는 "뭐 뭐 봤는데? 그거? 그것보다는 이게 더 괜찮은데?” 라는 말로 그녀들이 소득 없이 다리품을 파는 일에 종지부를 찍곤 했다. 여기에서 소득이 없다는 건 순전히 내 입장이고 엄마와 동생은 꼭 무언가를 사지 못해도, 새로운 트렌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 적잖이 즐거워 보였다.
아무튼 난, 두 여인과 취미가 좀 달랐다. 내가 생각해도 언니라기 보단 오빠스럽고 딸이라기 보단 아들스러울 때가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여성스럽니 남성스럽니 이런 말을 운운하는 자체가 구태의연하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천지가 개벽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정체성이라는 건 있으니까. 내가 아무리 여성성을 거부해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인 이상, 육아와 살림을 등한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등한시할 수 없다면
작정하고 즐겨야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안에도 여성스럽고 싶은 욕구는 늘 흘렀던 것 같다. 쇼핑에는 흥미가 없지만 예쁜 옷은 입고 싶고 요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플레이팅이 잘 된 음식을 보면 기분이 좋다. 꽃꽂이를 배운 적은 없지만 색감이 예쁜 꽃들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여행지에서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면들을 가볍게 덮을 만큼 외향적인 성향이 강했던 거겠지. 하지만 성향보다 힘이 센 건 환경이 아닐까. 여성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니까 전혀 다른 내가 된다.
매일 집안을 쓸고 닦는다. 눈을 뜨면 널브러진 이브자리부터 반듯하게 정리하고 햇볕에 보송보송하게 마른 수건들을 차곡차곡 개어서 욕실 서랍에 가지런히 넣는다. 오전에 해야할 집안일이 끝나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장을 보러 나간다. 신선한 식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담다가 계산대 근처에 비치된 꽃들을 힐끗거린다. 개중에 가장 색이 쨍한 걸로 한 다발 사 들고 와서는 주방 선반에서 잠자고 있던 화병에 한아름 꽂는다. 그러자 칙칙했던 식탁이 몰라보게 화사해졌다.
나도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같은 워커홀릭은 결혼을 해도 어떤 식으로든 경제 활동을 지속해나갈 거라 믿었다. 실제로 아이를 낳고 한 달도 안 돼서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예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집에서 퍼져 있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들었다. 결국 출산 후 4개월 만에 라디오 작가로 복귀해서 일을 했는데 결혼이나 출산보다 더 강력한 변수가 대기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배를 탔다
그래도 아직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어느 가족에게나 굴곡은 있게 마련이고 지금 우리 식구는 해외살이라는 한 배를 탔다. 늘 순항이면 좋겠지만 그런 항해는 판타지물에서도 보기 어렵다. 때론 큰 파도가 들이닥치고 때때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도 있겠지. 그럴 때마다 나 혼자 살겠다고 이탈한다면 배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내 인생이지만 더 이상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기에 조화와 인내를 가슴에 새기며, 오늘도 수양하는 마음으로 체코인 듯 무인도인 듯 그냥 이렇게 집콕 라이프를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