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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Dec 13. 2022

기브 앤 테이크는 국룰

관계를 지키는 소신

국룰. 발음은 우스꽝스러운데 의미는 제법 진지하다. ‘국민’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의도가 어떻든 뉘앙스가 딱딱해지게 마련인데 여기에 ‘룰’이라는 질서적 개념까지 붙었다. 국민의 룰. 국룰.


“결혼식 축의금은 5만 원이 국룰 아닌가요?”

“첫 데이트엔 파스타가 국룰이죠”


이 재미난 유행어를 익숙한 말로 되돌리면 ‘불문율’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일종의 사회적 관습을 두고 하는 말인데, 우리가 하는 사랑에도 필수불가결한 불문율이 따른다.


숭고한 사랑. 이성보다는 감성의 지배를 받는 특수한 영역. 그렇다 해도 예외는 없다. 제아무리 위대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약속이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국룰은 ‘give and take’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아는 이들 중에 이 원칙을 가장 잘 실천하는 인물은 나의 모친이다.


엄마에게는 한 명의 배우자와 다섯 명의 자식이 있다. 4인 가족이 표준인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21세기 대가족의 안주인. 그 자리의 무게가 얼마나 막중했을지. 얼마나 고되고 난감했을지. 딸인 나로서는 그 고충을 온전히 헤아릴 수가 없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가만히 짐작만 해볼 뿐이다. 내 몸은 하나인데 챙겨야 할 식솔은 여섯. 명예도 영광도 없는 ‘생활’이라는 링 위에서 홀로 여섯 명을 상대한다는 건 엄청난 체력전이다.


가까스로 체력이 따라준다 해도 바람 잘 날 없는 신경전에 KO(knockout) 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언제 나가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날이었지만 그녀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맷집이 강한 것도 맞겠지만 전술이 탁월했다는 쪽이 더 적확할 것 같다.


나의 어머니인 김여사는 전통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그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한없이 희생을 떠안는 고전적인 엄마도, 눈물과 한숨으로 눈앞의 현실을 방임하는 나약한 엄마도 아니었다. 그녀는 흡사 경영인의 마인드로 대가족을 관리했다. 희생은 하지만 무조건적인 희생은 하지 않았고, 사랑은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은 주지 않았다. 기브 앤 테이크. 엄마는 모든 식구들에게 이 원칙을 내비쳤다. 얼핏 계산적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손해 보는 쪽은 늘 김여사다. 남편이나 자식들이 하나를 내어주면 그녀는 받은 마음을 두 세배로 불려서 언제고 다시 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일신상의 변화가 생기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가족회의 안건으로 올려 구성원 모두를 고민에 동참시켰다. 가계가 어려울 때는 부엌 쌀독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림이 필 무렵에는 어느 은행에서 몇 개의 적금을 붓고 있는지까지도 숨김없이 공유했다. 우리는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위기를 타계했고 끈끈한 전우애로 가정의 평화를 도모했다.


결과적으로 김여사의 전략은 통한 셈이다. 엄마 덕분에 일찍이 알게 되었다. 건강한 사랑은 양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지혜로운 모정으로 배웠다. 누구나 기대한다. 사랑의 무한함을. 하지만 절대성을 내세우는 아가페적인 사랑은 어느 쪽이든 아프게 되어 있다. 그런 불공정한 거래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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