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빨간 지붕에 숨어
직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고작 일 따위가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풍요를 주고 행복을 주고 안식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 모든 열매를 딸 수 있는 신의 직업, 그런 일을 하는 자가 지구상에 한 명이라도 있기는 있는 건지, 지호는 도통 모르겠다. 교육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받았다. 만으로 세 살이 되던 해. 회사원인 아버지가 체코법인으로 발령을 받았다. 가족의 운명은 그렇게 결정됐다. 은행원이었던 어머니는 전업주부가 되었고, 지호는 금발머리의 또래들이 있는 현지 유치원으로 보내졌다.
"거기 싫어~ 안 갈래! 으아앙~~"
어려도 너무 어릴 때라 지호는 단 한순간도 떠올릴 수 없지만, 어머니는 요즘도 툭하면 그때 일로 열을 올리신다.
"그때 네가 아침마다 얼마나 대성통곡을 하던지... 아휴, 말도 마라."
지호는 한참 큰 후에야 듣게 된 사실이지만,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따돌림을 겪었다고 한다. 대충 짐작은 간다. 언어가 달랐고 피부색이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이 달랐고 노는 방식도 달랐다. 다르다는 건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다가 하나둘씩 호기심이 채워지면 서서히 흥미가 떨어진다. 붕 뜬 관심을 걷어낸 자리에는 본질적인 불편함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 다름은 이윽고 균열을 일으키고야 만다. 그때가 그러니까, 지호가 갓 세돌을 넘긴 무렵이었다. 한날은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제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세차게 내리치며 "온드라가, 온드라가, 이렇게 했떠! 일케 일케 때렸떠~!" 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다는 것이다. 잠결에 봉변을 당한 부모님이 몇 번을 되묻고 되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고. 자동응답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수차례 동일한 언행을 반복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억이 맞다면, 그때가 아마, 등원한 지 넉 달 즈음 지나고였다. 그 바람에 현지유치원에서,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모이는 국제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는 게 어머니의 전언이다.
"에이, 설마요. 그 나이에 왕따를 당했다고요? 제가요? 말도 안 돼."
"네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서 엄마는 참 다행이다 싶어.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라도 얻으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몰라."
"저는 그것도 모르고, 두 분이 영어교육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셔서 조기부터 투자하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얘는~ 세 살짜리가 영어를 쓰면 얼마나 쓴다고 네 배가 넘는 돈을 쏟아붓겠니. 현지기관에 다니면 밥값만 주면 되는데, 국제유치원은 무슨 원비가 그렇게 비싼지 생활비의 절반은 다 거기로 들어갔을 거다. 아휴. 그래도 어쩌겠니. 내 아들이 원숭이가 되는 꼴을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너도 자식 낳아 봐라~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국가가 뭔지, 인종이 뭔지, 차별이 뭔지도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인지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낯선 시선들. 지호는 어딜 가나 그런 눈빛을 받아야 했으니까.
"해외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확대해석하셨는지도 몰라요. 국제학교라고 크게 다르던가요. 한국에 있었다 해도 비슷한 일들은 있었을 거예요."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래,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는 문제지. 그래도 그때는 말이다. 지금처럼 담담히 받아들여지지가 않더구나."
"어쨌든 그 사건 때문에 국제유치원을 다니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그러니 어머니도 이제 그 일은 그만 잊으세요. 아셨죠?"
지호는 그렇다. 어머니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척을 하게 된다. 괜찮은 척. 의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왔다. 신기하게도, 그런 척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그런 상태가 된 듯한 일말의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유치원 왕따설은 대수도 아니다. 그 옛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에도 없거니와 설령 기억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지호 입장에선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지호는 해외에서 자라는 내내 크고 작은 배척과 거절에 맞서왔다. 체코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또 다른 다름의 이유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어정쩡히 서 있어야 했다. 경계인. 지호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경계에서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사람. 이제와 좋고 나쁨을 따질 수도, 원점으로 돌아가 도로 물릴 수도 없지만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니까.
누구에게나 그렇듯 지호의 삶에도 명암이 있다. 빛이 드는 만큼 그림자가 진다. 외부에서 보는 지호는 복 받은 아이일지 모른다. 다분히 그렇다. 만인이 선망하는 유럽의 국제학교들을 차례로 거쳐왔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부모를 잘 만난 덕에 해외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전교육과정 해외이수'에 해당하는 12년 특례로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열이면 열. 모두가 꽃길이라 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작 당사자인 지호는 아무런 향기도 맡을 수가 없었다. 향기 없는 꽃은 계속 들고 있어 봐야 거추장스러울 뿐. 지호는 눈에 띄게 시들어갔다. 결국 1학년 2학기를 간신히 마치고... 그해 겨울, 가족들이 있는 프라하로 날아왔다. 그 뒤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어?"
"엇, 그쪽은..."
올드타운에 서 있는 지호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낯이 익은 걸로 봐서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 어디가 어디였는지가 흐릿하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풀뱅 레이어드 스타일로 앞머리를 낸 앳된 얼굴의 한국인 여성. 얼굴은 소녀티를 채 벗지 못했지만 그에 반해 키는 한국여성의 평균 키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백팩을 둘러맨 것으로 보아 학생일 확률이 높고, 손에 셀카봉도 없고 함께하는 무리도 없는 것으로 짐작건대, 단기 여행객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지호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찾아낸 단서들은 대강 이렇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서 답답하기는 마주 서있는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상대 쪽 여성도 부지런히 기억의 태엽을 감고 있는 눈치인데. 어색한 두 사람이 어색한 모양새로 서 있는 현 위치는, 프라하 시내에 있는 3층 규모의 어학원 건물 앞. 그런데 피차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가지는, 다른 건 몰라도 수업으로 맺은 인연은 아니라는 것.
"아! 생각났어요!
형네 가게에서~ 마민카! 맞죠?"
번뜩이는 지호의 말에 단비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마민카 식당! 그때 그 사장님 옆에 그 뭐더라. 고문이라고 서 계셨던 분... 맞죠?"
"고문은 무슨요. 그건 형이 막 갖다 붙인 거고요. 그냥 아는 동생이에요."
"그게 그거 아닌가. 어쨌든 친하단 말이잖아요?"
"뭐, 그렇죠. 그렇네요."
지호가 말끝에 웃음을 흘리며 단비를 본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그쪽도 여기 학생이세요?"
단비가 어학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학생은 아니고 일하러요."
"그럼, 강사님? 체코어 잘하시는구나~"
"그냥 조금요. 그쪽? 아... 이름이..."
"단비요. 백단비."
"아, 단비씨! 저는 유..."
"지호! 이름은 유지호. 나이는 스물일곱. 우리 통성명 끝낸 줄 알았는데요? 그날 이해국 사장님이 알려주셨잖아요."
"아, 그랬죠. 이놈의 기억력이 참... 중요할 때 뚝딱거린다니까요."
곱게 갠 슈크림을 넓게 펴서 발라놓은 것 마냥 부드러운 크림색을 두르고 있는 어학원 건물. 그 아래에서 두 번째 통성명을 하고 있는 두 남녀를 지나가는 이들도 관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카키색 천가방을 뒤로 메면서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려온 단발머리 남학생은, 초록으로 물들인 앞머리를 흩날리며, 입구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라타다가 힐끗. 먼발치에서부터 응시하며 걸어오는 빨간 머리 여학생은 세상 무심하고 권태로운 얼굴로 검은색 이어폰줄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한번 무심하게 흘깃. 물론, 지호와 단비는 자신들에게 그런 시선이 오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지만.
"사실 그날, 두 분과 얘기를 좀 더 나누고 싶었는데요. 우리 국이형이 자만추를 모른다니까요. 아우, 답답이."
"자만추요?"
"요즘 한국 예능 보니까 다들 자만추, 자만추, 하던데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의 줄임말이라나 뭐라나. 맞나요?"
"네, 뭐."
단비가 멋쩍어하며 수줍게 시선을 돌린다.
"아!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비슷한 또래니까 다 같이 친구 하면 좋겠다 싶어서요~"
"네에... 자만추 좋죠. 친구도 많을수록 좋고요."
"좀 더 지내보시면 알겠지만 외국생활이라는 게 뭘 어떻게 해도 외롭거든요. 물론 그런 건 있어요. 외로움 못지않게 경계해야 하는 게 사람이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맞는 이들과의 연대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음... 뭘 위해서요?"
"그야 당연히, 외로움에 빠진 나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서죠. 해외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결이 좀 다르다고 할까요. 아무튼 위험해요, 여러모로."
타인과 타인이 만났다. 학연도 지연도 아닌 생판 모르는 낯선 이들이 서로의 인생에 개입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제까지 남이었던 관계가 오늘의 친구가 될 가능성은? 사는 동안 이런 경험을 할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아있을까. 더 있기는 있을까. 지호와 단비. 지금은 둘 중 누구도 이 만남에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그리고 해국과 수빈이 이 일을 두고 어떤 반응을 내비칠지도 물음표다. 그럼에도 지호는 선 밖으로 슬쩍 한 발을 뻗었고, 단비 또한 익숙한 관계의 틀, 그 테두리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느 쪽으로 가세요?"
"저는 저기 강 건너편에 있는 트램 정류장이요."
"그럼 거기까지 같이 걸을까요?"
"네, 좋아요."
"아 그리고... 그때 같이 계셨던 분이요... 이름이 수... 수우..."
"수빈 언니요?"
"맞다! 수빈씨... 수빈단비. 수단. 빈비. 수단. 빈비."
지호를 뚫어져라 보던 단비가, 더는 못참겠다는 듯 물었다.
"뭐...하세요?"
"열심히 입력 중입니다. 수빈단비. 수단. 빈비."
"와... 진짜 엉뚱하시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지호가 한층 더 엉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예~ 뭐...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네~?"
낯선 이와 단 둘이 길을 걷다 보면 새삼스레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는 게, 적정하게 보폭을 맞추면서 서로의 말소리에 집중한다는 게, 얼마나 까다롭고도 유의미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서로의 걸음을 응원하면서 비슷한 속도로 동일한 지점을 향해 걷는 것. 어쩌면 그게 관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고, 오늘 지호는 어렴풋한 신념을 가슴에 새긴다. 친구든 사랑이든 인류애든 뭐든 관계없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고픈 어떤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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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간 지붕에 숨어(가제)>는 오는 겨울 무렵, 종이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곧 지면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